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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 Oct 22. 2021

작은 아지트

 아침에 일어나 뭉그적거리며 조심조심 침대에서 내려온다. 바로 앞에 있는 창문 커튼을 열면 햇살을 마주하기도, 흐린 날을 마주하기도 한다. 오늘도 잘 잤다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조금씩 좋아진다. 매일 아침을 기쁘게 맞이하려 노력한다. 


 취향에 맞춘 방에서 나는 병의 회복을 위해 힘쓰고 있다. 분홍색과 흰색이 잘 어우러진 내 방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행복했기에,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부지런해졌다. 밖에 나와있는 물건을 정리하고 매일매일 청소기를 돌리고, 주기적으로 욕실 청소를 하고, 밥을 먹고 나면 바로 설거지를 했다. 방을 정돈하는 것뿐만 아니라 몸에 맞는 영양제와 병원에서 타 온 약을 빠뜨리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누군가에겐 그저 보통 일이겠지만 내겐 매일같이 삶을 보듬고 마음을 보듬는 작업과도 같았다. 하루도 게을리할 수 없었다. 습관처럼 무기력이 찾아와도 아직은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남아있었기에, 가만히 앉아있기보단 조금이라도 움직이며 기운을 차렸고 깨끗해진 방을 보면 뿌듯하고 행복해했다.


 방을 정돈하고 꾸미는 건 삶을 정돈하고 꾸미는 것과 같다. 주위를 정돈하는 것만으로도 마음가짐이 달라지는걸 직접 경험했으니 말이다. 오랫동안 머물던 공기를 순환시키듯 물건도 순환이 된다는 걸 깨닫고 생활습관을 돌아보며 매일 같이 물건을 정리하는 중이다. 몇 년 동안 갖고 있어도 쓰지 않거나 필요 없는 물건은 과감하게 버리고 꼭 필요한 물건만 샀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고자 하는 건 아니었지만 깨끗한 방을 유지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정리하는 루틴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정돈하고 나의 고양이를 위해 밥그릇과 물그릇, 화장실을 정돈한다. 전날 모아두었던 쓰레기나 재활용품은 출근하면서 버린다. 퇴근하면 손부터 깨끗하게 씻고 나의 고양이에게 다녀왔다는 인사를 한 후 청소기를 든다. 마룻바닥에 머리카락이나 고양이 모래가 남지 않도록 꼼꼼하게 청소하고 청소기 먼지주머니를 바로바로 비운다. 매일 같이 돌리는데 돌릴 때마다 사람 머리털과 고양이 털이 엄청나다. 다음엔 소파와 그 앞에 깔린 카펫과 원형 러그를 돌돌이로 밀며 먼지를 턴다. TV를 켜 TV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돌돌돌, 먼지가 묻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민다. 역시나 매일같이 미는데도 사람 머리털과 고양이 털이 엄청나다. 이젠 묻어 나오는 먼지들을 보면 뿌듯해할 지경이 되었다. 그다음엔 옷을 갈아입고, 물 한 잔 마시면서 소파에 푹 몸을 뉘인다. TV 옆에 장식한 조화가 눈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진다. 분홍색과 흰색, 그 외에 다른 색들이 어우러져 보이는 방 안이 내 눈엔 여전히 예쁘기만 하다.


 주말에 밀린 빨래를 돌리고 욕실 청소를 마친 후 해가 들어오는 창가 근처에서 등받이 쿠션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감정이 밀려왔다. 주중에 힘든 일이 있으면 강박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푹 쉬었으며 다시 기운을 차리면 방을 정돈하며 마음도 같이 정돈했다.


 매일 좋은 날은 아니었기에 마음이 힘들 때를 대비해 마음을 보듬었다. 갑자기 우울해지면 내가 마련한 공간에서 쉬고, 갑자기 기분이 업 될 때도 나의 방에서 숨김없이 기뻐했다. 서서히 환청이 가라앉다 하루만 빗나가도 다시 원위치로 되돌아왔지만 더 나빠지지 않음을 알기에, 더 좋아질 것을 알기에 서두르지 않았다.


 내가 만든 공간에서 나는 많은 위로를 받고 있다.







 행복하다. 집 안에 들어서며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 여전히 밖으로 나가는 일이 불안하고 사람 상대하는 일이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어가는 것 같지만 집에 오면 예쁜 내 방이 반겨주고, 책상 한 편에 둔 엄마의 사진이 반겨주고, 나의 고양이가 반겨주니 다음날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새벽이면 자꾸 나의 귀여운 고양이가 잠을 깨우곤 하지만 말이다. 


 작은 원룸에서 좋아하는 공간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니 모든 곳이 아지트가 된 기분이다. 푹 쉴 때는 침대에, 한가롭게 뒹굴거릴 때는 소파에, 컴퓨터나 공부를 할 때는 책상 앞에, 책을 읽을 때는 바닥에 깔린 부드러운 러그 위에. 곳곳이 나의 취향이 모여드는 아지트들이다. 취향에 맞춘 사랑하는 작은 공간에서 사는 것이 행복하다.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았으니, 나는 이제 어디를 가든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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