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받아보는 홈 스타일링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진행됐다. 요청자의 실제 방 사진과 면적이나 도면을 제공하고 예산이 어느 정도인지, 원하는 인테리어는 어떤 것인지 정보를 주면 스타일리스트가 집과 인테리어에 맞는 가구 배치 시안을 만든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시안을 하나 고르면 배치에 맞는 가구를 하나하나 추천해주는 방식이었다.
스타일리스트님께서 보내준 가구 배치 시안 중 눈에 띈 것은 침대를 창문 쪽으로 배치하는 시안이었다. 각에 맞추어 딱딱 정돈되길 바랬었는데 그 시안을 보자 이것도 정말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혼자라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가구를 배치하면 벙커침대 위에서 바로 햇살을 받으며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실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보내준 시안 중 하나를 콕 집어 제일 마음에 든다고 실토했다.
침대는 무조건 벙커침대로 할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크기와 길이에 맞게 창가에 배치해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시안에 넣어두었다고 하셨다.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라고 하시며, 고른 시안 그대로 진행하기도 했다.
시안이 정해지자 벙커침대부터 주문했다. 침대 프레임이 없어 매트리스를 바닥에 깔고 자고 있었기에 제일 급한 가구이기도 했다. 벙커침대 주문을 시작으로 방에 맞춘 가구들을 하나하나 들여나가기 시작했다. 가구를 들이는 중간중간 장례를 치르는 등 정신없는 일이 많았지만 감사하게도 주변의 도움으로 하나 둘 마련해갈 수 있었다.
방을 꾸밀 주 색상은 분홍, 흰색이었으니 그 색에 맞는 가구들을 고르고 골랐다. 너무 같은 색만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금방 질리도록 단조로울 것을 알아 TV장을 분홍색으로 샀다면 책상을 흰색, 소파는 회색으로 두는 식이었다.
분홍색 TV장을 샀으니 TV는 흰색,
흰 책상 위에는 분홍색 데스크 커버와 포인트 색으로 장식했다.
제일 아쉬운 점은 컴퓨터 모니터였다. 나름 쓸데없이 눈이 높아 사양 좋은 모니터를 사고 싶어 했는데 그 모니터들이 다 검은색이지 뭔가. 흰색 책상에, 분홍색 데스크매트에, 키보드까지 분홍색인데 모니터가 검은색이라니 색 배열에 목숨 건 사람처럼 흰색 고사양 모니터를 이 잡듯 뒤지고 지인에게까지 부탁해 찾아보았지만 원하는 사양의 모니터는 쉽게 구할 수 없었다. 결국 나중에 흰색 시트지도 붙이자는 합리화를 하고 나서야 모니터를 고를 수 있었다. 쓰고 있는 바로는 너무나 좋지만... 역시 흰색이 더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모니터는 흰색 폴암으로 깔끔하게 배치하고 밑 공간을 넓게 사용할 수 있게끔 했다.
벙커침대는 받은 시안대로 창가에 배치했다. 리뷰 몇백 개를 다 읽은 후 고른 철제 벙커침대는 남산만 한 풍채인 나도 잘 커버해 줄 수 있다는 말에 고르고 고르다 하나를 골라 사게 되었다. 거의 애착 이불이 되다시피 한 구스 이불을 세탁소에 맡기고 제일 좋아하는 색인 분홍색 이불 커버에 끼워 넣었다. 베개커버 역시 분홍색이다.
이 구스 이불은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좋아해 사계절 내내 끼고 있던 터라 어머니께서 자취방에 갈 때 제일 먼저 싸주셨던 이불이었다. 너무 낡아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버릴 수 없었다. 여전히 푹신하고 부드러웠다.
벙커침대 밑 공간엔 책장을 두기로 했다. 스타일리스트님께서 추천해주신 움직이며 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책장으로 골랐다. 가구를 두고, 그동안 정리 못했던 책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하나씩 채워져 가는 책장을 보니 설레는 감정이 먼저 들었다. 바닥엔 원형의 아이보리 러그를 깔고 등받이 쿠션까지 비치하면 앉아서 즐겁게 책을 읽는 아늑한 공간이 되었다.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이전엔 책을 둘 데가 없어 2층 침대에도 널려놓고 했는데 내가 갖고 있는 책은 충분히 수납할 수 있는 책장과 공간이 너무너무 예뻤다.
정리가 되자 딱 소파를 둘 공간이 남았다. 그런데 침대 뼈대도 그렇고 너무 훤히 보이는 것 같다. 천을 덧기울까 했지만 더 지저분해 보일 것 같아 타공판 가벽을 설치하기로 했다. 혼자 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무리였다. 이전 이사업체 부부께는 너무 도움을 많이 받아 다른 분께 도움을 요청했다. 이것저것 용역일을 해주시는 분이 와서 작업해주셨다. 튼튼하게 완성된 타공판 가벽은 또 어떻게 꾸며갈지 나름 즐거운 고민을 하게 했다.
회색으로 주문한 소파는, 소파 배드 형식이기에 침대로도 쓸 수 있고 소파로도 쓸 수 있었다. 나중에 친구나 손님이 놀러 오면 잘 수 있는 공간도 생겼다. 소파 밑 러그도 주문했다. 소파가 회색 이어 과감하게 분홍색으로 샀다. 결과는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나의 고양이를 위한 물품들도 배치했다. 화장실을 두고, 스크래쳐를 곳곳에 두고, 캣타워를 뒀다. 정리가 되고 나서 내 사랑하는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식기와 물그릇도 좋은 것 중, 분홍색으로 골라봤다.
이렇게 내 방이 완성되었다.
내가 하나하나 직접 꾸민 하나밖에 없는 방, 하나뿐인 방. 그래서 하나방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어감이 이상하지만 부르다 보면 귀엽다)
이전까진 잿빛으로 뒤덮인 나날들이었지만 오늘, 내일, 그 이후가 지나 나중에 펼쳐보면 퀼트처럼 알록달록할 인생이 되어 갔으면 했다. 지금이 그 알록달록한 중간 즈음의 날이라 믿으며, 분홍색을 닮은 밝고 화사한 색으로 매일매일 하루를 칠해 가기로 했다. 내가 사랑하는 집과 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