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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 Oct 15. 2021

이유 없는 혐오

 낯선 사람을 극도로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증상을 보며 의사 선생님은 증상의 이유가 이유 없는 혐오라는 말씀을 하셨다. 저 사람이 먼저 해코지한 것도 아닌데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거나 움직이는 행동을 하면 나를 죽이기 위해 소음을 내는 것 같았고 어디서든 들려오는 사람 소리, 대화 소리가 전부 나를 향한듯해 끔찍이도 싫었다. 너무나 싫었다.


 한 번 고정된 생각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외모도 그리 좋은 편도 아니고 풍채도 산만해 수군거림을 받기 충분한 조건이라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모든 목소리가 나에게 하는 욕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니 길거리를 지나다니기만 해도 공포스러웠다.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때면 주위에 앉은 낯선 이들에 모든 신경이 몰려 숟가락으로 밥을 뜨는지 젓가락으로 국을 뜨는지 집중도 되질 않았다. 보통 대표님과 같이 밥 먹는 일이 잦았는데, 그나마 상사와 단 둘이 먹는 것까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지만 낯선이 와 동석해 식사를 할 때면 그것만으로도 창문에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어떻게 처음 만난 사람 하고도 그렇게 잘 친해지고 같이 밥을 먹자고 권유를 할 수 있을까. 상상도 못 한 친화력에 대표님 옆자리에서 벌벌 떨며 얼른 이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허리가 빳빳해질 만큼 솟아오른 긴장 속에 밥알을 겨우겨우 욱여넣고 있으면 풍채에 비해 새 모이만큼 먹는다며 먹는 내내  타박받아야 했다.


 대표님은 하나뿐인 직원인 나를 챙기시려 웬만하면 같이 밥을 먹으려 하셨고 다른 점심 약속도 거절하고 챙기러 오신 호의를 마냥 거절하기엔 능력치(짬밥)가 너무도 부족했다. 점심식사를 하러 갈 때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식당 안에 옆자리에 합석한 사람들, 대화 소리, 낯선 이들의 목소리가 매 순간 목을 조였다.


 병을 감춰야 했기에 이를 악물고 참았고 참는 데에 기력을 다 소비하니 밥을 씹어 삼킬 기운이 없었다. 자신이 사주는 밥이 맛이 없냐며 타박하셔도 열심히 먹고 있다고 새발의 피 같은 변명을 낼 수밖에 없었다.


 이러니 점심은 거의 굶다시피 했고 혼자 있을 시간인 저녁엔 먹고 싶었던 걸 눈치 없이 마음껏 먹어대니 식습관이 불균형해졌다. 식사가 불규칙하니 당연하게도 몸은 매 순간마다 뿔었다 (ㅠㅠ). 






 병을 고백한 후 제일 먼저 바뀐 건 점심시간이다. 낯선 이들이 없는 자리에서 혼밥을 선호하는 걸 알게 된 대표님은 점심시간은 꼭 혼자 있도록 시간을 만들어주셨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김밥을 사다 먹기도 했고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포장을 해와 먹기도 했다.


 점심시간이니 업무용 전화선을 빼놓고 홀로 조용하게 먹는 점심식사란, 정말이지, 너무너무 행복했다. 밖에 나와있는 와중에 아주 잠시간 여유롭고 행복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먹는 속도 눈치 보지 않고 꼭꼭 씹어서 먹고 가끔은 의자에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ADHD 과잉행동에 기반한 반복적 행동이다) 콧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 짧은 휴식시간은 오후를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잠깐 낮잠을 잔 뇌가 짧게 리셋되듯, 기분과 조막만 한 사회성은 행복하게 보낸 한 시간 분의 분량으로 버티며 '나'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이사 하기 전이어서 출근과 퇴근은 여전히 가시밭길 같았지만 사무실에 도착하고 나면 점심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말을 하기 전까지는 그 '우연한 행복' 찾아오기를 속으로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대표님께서 갑자기 일이 생기셔서 같이 점심을 못 먹어 혼자 밥을 먹게 된다는 우연에서 찾아오는 행복 말이다. 대화하지 않았을 때는 대표님께선 내 상황을 모르니 당연히 직원을 챙겨야 된다는 생각이 먼저 셨을 것이다.


 직원을 챙기려 일부러 사무실에 왔더니 터무니없게 실망한 얼굴로 맞이하는 직원을 보면 대표님도 아주 의아하셨을 테고, 나는 나대로 혼자 밥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순식간에 무너진 상황에 속으로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악순환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됐을 테니 말이다.


'우연'을 기다리지 않고 '필연'으로 만들었으면 더 좋았다는 걸, 그리고 어렵지 않게 필연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내 상황은 내 취향에 맞춰 내가 만들어어야 내가 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다. 나조차도 나에게서 취향을 빼앗을 수 없다.


 방을 꾸미기 위해 방에 맞는 가구 중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배치하는 것처럼 일상 여기저기 숨어있는 여가시간을 꾸미는 건 오롯이 내 몫이다. 내가 꾸미기 않으면 누가 꾸며줄 수 있을까. 


 점심시간 환경의 변화로 작은 마음의 평안을 얻은 나는 이제 다른 것들도 하나하나 바꾸면 되지 않겠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걱정 마, 뭐든지 해줄게. 여전히 밖은 무서웠지만 혼자 있는 공간에서 취향에 맞도록 하나씩 채워갈 생각에 설렘과 자신감이 조금씩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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