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과 쓸모없음의 경계를 이야기하다
김민정 작가의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을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쓸모없는 걸까? 아름다운 건 그 자체로 쓸모 있다고들 하는데 아름다우면서 쓸모없을 수는 없는 걸까? 어쩌면 정말 쓸모없을지도 모르는 이 질문에 대해 시인은 두 가지 답을 내놓는다.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것에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반대로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것에 쓸모없음을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당연한 듯 지나친다. 종이와 몇 가지 색의 볼펜, 마트 한편에 진열된 과일, 한쪽 끈이 풀려 널브러진 플랜카드들을 너무 당연한 듯이 지나친다. 이런 풍경들에서 우리는 쓸모를 발견하지 못한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언제나 있을 것 같은 것들은 우리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는 이 지점을 비틀며 시작한다.
시집의 제목이자 첫 시인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에서 화자는 본인이 주워온 ‘돌’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돌’ 속에 굉장한 전설이 담겨 있는 것처럼 대한다. 그리고 화자가 전설을 한 겹 벗겨내 눈앞에 보여주면서 ‘돌’에게 자꾸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더 이상 그냥 ‘돌’이 아니게 되는 것, ‘은빛 대야’ 속에서 며칠을 지냈는가 하면 ‘남성성’을 불러일으키는 ‘돌’로 변모하게 될 때 대부분의 사람에게 쓸모없을 ‘돌’은 아름다움을 부여받게 된다.
여기서 아름다움은 단순히 겉모습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시인은 관념에서 시작해 지극히 개인적으로 펼쳐나가다 결국 그것을 읽는 독자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지점까지 밀고 나간다. 시는 여기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독자가 ‘나도 저런 물건이 하나쯤 있었지’라는 생각, 그리고 다시 한 번 내 주변을 돌아보게 될 때, 주변의 사물들은 의미를 부여받을 가능성이 생기고 이 지점에서 시는 더 멀리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개는 「봄나물 다량 입하라기에」에 나오는 ‘냉이’에 붙은 이름에 대한 고찰, 「상강」에서 펼쳐지는 ‘생강’에 대한 ‘생각’ 등에서 더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일상 속에서 찾은 사소한 의문들과 비유들이 구체적으로 변할수록 그것들은 우리 무의식에 자리하는 저지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으려 시도한다. 문화, 전통, 통속 등으로 부를 수 있을 그것들의 아름다움(여기서 아름다움은 문화, 전통 등이 가지는 고정적인 속성에서 나온다)은 ‘더러 너의 거기를 쏙 빼닮은 생각’, ‘대낮부터 마누라 너무 조지지 말고’ 등의 말을 통해 고유의 영역을 벗어나게 된다. 이때 시인은 벗어난 영역 속에서 전통, 문화들의 쓸모없음을 찾아낸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통용되는 전통, 문화, 관습 등을 미덕으로 생각한다. 특히나 ‘성’과 같이 개인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들을 사회적으로 표출하지 않는 것이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시인은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일상 속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럼으로써 감춰져 있을 때 아름다운 ‘성’을 쓸모없음의 영역, 우리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인다.
「오늘 하지」에 나오는 택시 기사 아저씨들의 대화,
-그럼 디비 자라 딸딸이 졸라 쳐대지 말고
-손님 카드 긁을 힘도 없다 이 씹새끼야
「상강」에서 화자의 말,
그 곰에 어쩌다 탕이 붙어
성교의 은어가 되었는가 모르겠다만
한때 나는 구강성교라면 딱 질색이던
정숙하고 조숙한 너만의 칼집
이런 문장들은 「밤에 뜨는 여인들」에 나오는 선언, ‘몹시 문란하지 않으면/가족은 탄생할 수 없다’, ‘사랑은 탄생할 수 없다’, ‘이해는 탄생할 수 없다’처럼 ‘성’은 거창한 게 아니란 걸 다시금 일깨워준다. 결국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가족, 흔히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랑, 이해와 관용들은 모두 문란하기 때문에 생긴다는 역설을 제시함으로써 아름답고도 쓸모없는 무언가를 시인은 만들어낸다.
마치 시가 될 순간은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장면들은 사진도 아닌, 그림도 아닌 움직임으로 기록돼 있다. 옆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우리 일상에 대한 관심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시가 시로서 존재하게 될 수 있는 게 바로 이 지점이지 않을까 싶다. 내 옆의 무언가도 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발견한 것처럼 너무나 설레는 일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