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모든 인연을 위한 작은 위로

by 쇼코는 왜

최근 『쇼코의 미소』를 읽었다. 여러 개의 단편이 들어있고 「쇼코의 미소」는 맨 첫 장을 장식하고 있었다.


나와 이어진 수많은 인연들, 그것들과의 만남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내가 인지하는 것보다도 많다. 싸우고 헤어지고 화해하고 다시 만나고, 아침에 했던 인사를 다음 날 할 수 없게 되는 것. 이 모든 일들이 누군가에게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고, 그 모든 걸 아우르는 시간이 실처럼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먹먹했다. 서정적이면서 담담한 문체의 힘도 컸지만 그것들의 밑바탕이 되는 이야기가 ‘있을 법한’ 일이라 너무 가슴에 와 닿았다. 소설이 장르로서 수필과 구별되는 건 ‘꾸며낸 이야기’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있을 법한’ 것, 그 부분 때문에 소설은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부분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이고 반대로 사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쇼코의 미소』는 전자에 가까웠고 작가가 삶의 가장 밀접한 부분에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는 몇 개의 문장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쇼코의 미소」, 24쪽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씬짜오, 씬짜오」, 89~90쪽


서영채 문학평론가는 이러한 작가의 세계를 ‘순하고 맑은 서사의 힘’이라고 밝히고 있다. 나도 물론 이러한 의견에 동의한다. ‘서사’는 모든 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 요소다. 하지만 ‘순하고 맑은’, 이 지점에서 『쇼코의 미소』는 다른 소설과 구별된다.


‘순하다’와 ‘맑다’는 소설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은 아니다. 시에서 자주 쓰이는 저 말의 저의에는 ‘자의식’의 ‘순함’과 ‘맑음’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이는 물론 소설에서 자의식이 배제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소설은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자아와 자아 간의 갈등 및 해소가 큰 구조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의 자의식이 인물을 통해 직접 드러나지 않는 반면 『쇼코의 미소』는 자아와 자아의 관계 속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그것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큰 틀의 세계는 주변부로 밀려나있다. 작가의 표현처럼


정명희 작가의 '그 여름날의 달빛 3', '그 여름날의 달빛 4, '그 여름날의 달빛 2'

“나는 차가운 모래 속에 두 손을 넣고 검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 우주의 가장자리 같다. / 쇼코는 해변에 서 있으면 이 세상의 변두리에 선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나서, 역사나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를 만나는 기분이고, 외톨이들끼리 만나서 발가락이나 적시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했다.”, 「쇼코의 미소」, 9쪽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 또는 공동체,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의 관계들이 부딪히는 삶은 온전히 그들만의 일이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이야기의 주된 축을 이룬다. 갈등의 해결방법은 삶의 방향만큼 다양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두 가지 정도로 나뉜다.


첫 번째, 갈등이 있었던 대상끼리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관계가 끝나는 경우가 있고 두 번째로 갈등이 있던 대상끼리 오해를 풀지만 관계가 회복되지 못한 채 끝나는 경우가 있다. 전자는 「한지와 영주」의 경우고 후자는 「씬짜오, 씬짜오」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미적지근한 마무리는 읽는 내내 느꼈던 먹먹함을 소설을 읽고 난 후까지 끌고 간다. 우리도 늘상 마주치는 사람, 특별한 사람, 사랑했던 사람 등 나를 관통하는 관계 속에서 이런 마무리를 겪진 않았었는지 소설을 읽음으로써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나의 작은 인연, 나의 연인, 가족과 친구, 스쳐지나갔을 사람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세상 속에서 받았을 사랑과 상처와 슬픔과 두려움과 기대감을 나는 생각한다. 그 모든 것들과의 인연 속에서 느낀 감정을 『쇼코의 미소』를 읽으면서 공감 받고 위로 받을 수 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게 되면 담담하게 뱉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나도 저렇게 많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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