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너무 무서운 영화를 봐버렸다.

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

by 쇼코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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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공포영화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싫어하는 편에 속한다.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걸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게 불쾌하기도 하고 이럴 때만 피어오르는 풍부한 상상력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이면 자꾸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매의 집>을 본 건 그저 우연이다.


<남매의 집>, 부모님 없이 남매만 있는 집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매의 집에 정체불명의 사람 3명이 찾아들게 되고 그로 인해 남매의 집 내부에서 일어나는 괴이한 일들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쪼는 맛이 있다. 분명 공포영화도 그렇다고 스릴러 영화도 아니지만 조그만 집 하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공포스럽고 긴장감 넘치게 전개해낸다.


영화는 남매가 가지고 있던 일상의 파괴가 주된 이야기의 흐름이지만 결말부에 다다라서는 다시 변화된 일상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 기이한 반복 구조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도록 작가는 상징과 미장센을 적극 활용한다. 오랫동안 못 봤던 아빠의 전화가 끊길 때 들리는 수신음, 키우던 새의 죽음과 재생, 동생의 납치와 귀환 등 영화 곳곳에 배치된 미장센들은 영화의 분위기를 끊임없이 디스토피아로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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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도 없고 밖에 나가서도 안 되고 빨간펜 선생님을 기다리며 수십 번은 지웠다 쓴 수학 교재가 있고, 지지직거리는 티브이 화면에 '개새끼'거리는 '새' 맹구까지 이것들이 보여주는 건 모든 세상이 이미 남매의 집에 한정돼 있다는 사실이다. 남매의 집은 그나마 규칙이 존재하고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상을 가지고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런 세상을 침범한 3명의 남자는 각자가 정신적으로 불안하다. 그리고 외부의 알 수 없는 사람을 섬긴다. 그리고 그들은 새를 죽이고 수학 교재를 풀고 서로를 다치게 하고 사과하고 새를 다시 살려내고 여동생을 강간하고 납치하려 하는 등의 여러 모습을 보인다.


작은 디스토피아를 보여낸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집 밖으로 나간다. 다시금 찾아온 일상, 오빠는 티브이를 켜고 납치된 동생은 차에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돌아오고 새는 남자들이 놓은 주사에 살아난다. 일상은 분명 돌아왔지만 지워지지 않는 볼펜으로 적은 수학 교재와 부서진 서랍 등 남자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은 지워지지 않을 그리고 끝나지 않은 디스토피아의 서론처럼 보인다.


영화가 끝나고 머리가 아팠다. 이해할 수 없는 문장과 의미들이 머리를 나돌았고 못 볼 걸 본 듯이 자꾸만 장면들을 잊으려 애썼다. 결국 내가 알 수 있었던 건 무슨 의미인지 짐작할 수 없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의문뿐이었다. 끝나지 않은 디스토피아, 그것을 목격한 최후의 관찰자처럼 나는 그저 무기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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