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끔 떠오르는 생각들
더 인간적인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말과 행동 그리고 태도 등에서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하는 것들과 인간적이지 못한 것이라 하는 것의 경계와 인간적인 것을 정의할 수 있는 그 지점에 대한 고민은 '나는 인간적인가', '인간적이지 못한 인간은 어떤 인간인가' 등의 고민을 하게 한다.
어떤 상황에 마주해 있으면서 그 상황과 전혀 상관 없는 다른 것을 생각하곤 한다. 친구의 진지한 고민을 듣고 있으면서도 카페 찬장에 놓인 예쁜 티팟을 어디서 구해왔을지 궁금해 하고 현실과 맞닿아 있지만 직접 나에게 다가오지 않은 문제들, 예를 들어 안락사에 대한 논의나 공인의 도덕적인 책임에 대한 문제가 나의 현실로 다가왔을 때 치열하던 관념은 어디간 곳 없고 현실만 남아 있을 때 논의를 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러면서도 그 현실과 벗어난 것, 방금 봤던 영화의 미장센에 대해선 다시 한번 거친 토론이 오가기도 한다.
최근 한 소설을 읽었다. 가장 관념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모든 상황은 자신의 현실에 맞닿아 있다고 말하던 부부, 이혼을 앞두고 이모의 갑작스런 자살 예고에 그녀를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모가 죽으려고 가는 스위스에 같이 가서 그녀가 호텔로 들어가고 그들은 밖에 남는다. 그리고 소설을 끝이 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상황이 현실에 맞닿아 있다고 주장하던 부부가 결국 가장 밀접하고 현실적인 이모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것도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마주했을 때 관념적인 것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하던 그들은 침묵하고 만다. 가장 인간적인 것은 무엇일까.
저런 상황 자체가 인간적이냐 인간적이지 않냐라는 문제에 답을 하진 않는다. 다만 상황에 따라 진정성에 대한 문제는 인간적인 것에 대한 논의로 넘어갈 여지가 있는데 위의 예에서 봤던 것처럼 가까운 누군가의 자살 예고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무엇이든 하는 것, 이런 상황에서 '인간적', '비인간적'이라는 평가는 도덕적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한 사회의 문화나 개인의 도덕적 관점에 따라 이루어지는 인간적이란 평가는 가장 인간적인지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한다.
인간적인 인간은 개인과 사회의 보편적인 규범이나 도덕, 법과 생활양식에 부합하는 이상향의 성격을 띤다. 그러면서도 저 많은 부분 중 하나만 충족하는 단편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인간적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만큼 다의적이다. 그렇다고 모든 인간이 인간적이라는 말을 들을만큼 광범위한 것도 아니다. 전체면서 개인적이고 은밀하면서도 공유된 이 개념에 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 자신을 더 인간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뭐가 인간적인지에 대한 생각은 인간적이지 못했거나 못한 인간이 하는 게 보편적이지 않을까. 이 논의에서 인간적인 인간은 어떤 대상을 특정하는 것이 돼선 안 된다. 그렇기에 결국 가장 인간적이란 말, 그것에 대한 해답을 나는 현실에서 찾고자 한다. 그래서 나는 살아가야 한다.
'가장'이란 말은 불변의 속성을 포함한다. 이데아처럼 변하지 않는 완벽한 원형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을 현실에서 찾아내려 하는 노력은 시작부터 모순을 가지고 있다.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테지만 이러한 과정은 결코 다가갈 수 없는 관념에 대한 것을 현실에서 찾음으로써 그것에 다가가고자 하는 인간적인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