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시장 페스티벌, <날개>
한 달 전 혜화를 걷다가 한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소설시장이란 이름의 연극 페스티벌,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소설들을 연극으로 각색해 공연한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이상의 <날개>가 너무 궁금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유명한 첫 구절만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나에게 다분히 난해한 말을 뱉으며 '나중에 크면 너도 알게 될 거야'라며 머릿속을 때렸던 그가 지금에 와서 내 앞에 어떻게 펼쳐질지 너무나 궁금했다.
좁은 극장 속 장막을 보는 순간,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단 걸 직감했다. 충분히 공간을 분리하면서도 너머의 이야기까지 볼 수 있는 얇은 장막, 또 그것이 스크린의 역할까지 수행했을 때 더 좋을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 속에서 시작된 연극,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이중 구조를 가진 연극은 나름 새로웠다. 목소리 ASMR을 들려준다며 이상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장면은 누가 봐도 유튜브, 트위치 등의 플랫폼을 떠올리게 했고 그 시작은 꽤나 설득력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진행된 이야기들은 다소 어수선했다. 우선 이야기(현대의 유튜버) 속 이야기(소설 '날개')의 시점은 너무 난삽했다. 그 예로 극 중 '이상'이 소설 속 문어체와 현대의 구어체를 섞어 사용한 것, 'ASMR을 하는 화자'의 장소로 가 소설 속 장면(화장품 냄새를 맡는 것)을 연기한 것, 조명의 불분명한 사용으로 인물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진 장면 등이 이상의 위치를 불분명하게 했다.
또 'ASMR을 하는 화자'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부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와의 조합을 의식해서일까 이게 주인공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지 'ASMR을 하는 화자'의 말을 통해 전달되는지 헷갈리는 순간 이야기가 힘을 잃고 말았다. 때문에 이 연극은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한 발자국 뒤에 있는 느낌이었다. 이 부분은 각본과 연출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관객으로서 이 고민이 계속될 때 이상과 금홍은 마치 꼭두각시처럼 보인다. 결국 전달되는 이야기는 마주치는 현실보다 분명 약하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만 것이다.
그렇다 보니 관객들은 계속 자기들이 보고 있는 시점과 극 중 시점을 일치시키려 노력하게 된다.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게 아니라 한 번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지점이 반복되면서 관객은 피로를 느끼게 되고 결국 연극이 절정으로 감정선을 이끌어 가다 터트리는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할 관객은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모든 상황과 잡념과 개인이 부서지는 파멸의 순간, '그만!'이라고 외치는 그 순간이 마치 콩알탄처럼 느껴지며 연극 전체의 완성도가 낮아지고 만 것이다.
처음 들어왔을 때 무대를 보는 순간만 하더라도 이상이 어떤 모습으로 날아오를지를 기대했지만, 결국 이상은 두 번 박제되고 말았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라고 누가 묻는다면 '알았는데, 이젠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