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쇼코는 왜 Apr 12. 2019

하얀 세계 위 삶을 증명하는 검은 발자국, <아틱>

영화 <아틱>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말과 글은 많은 걸 알려주지만 기록으로, 주워 담을  없는 것으로 고정되고 확정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정보를 한정한다고 말할  있다. 간혹 어떤 영화나 책을 한 줄로 정리해놓은 것들을 보면 격하게 공감을 하다가도 조사 하나, 단어 하나가 거슬릴 때가 있다. 그건 아마도 단정된 단어  사소한 것들이 주는 느낌이 나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가진 대화법을 선호한다. 예를 들어 상황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식이다.


영화에선 의도한 것들과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모여 상황이 된다. 그리고 상황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은 영화에 대한 보다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굳이 춥다고 힘들다고 배우가 입으로 뱉지 않더라도 배우의 몸과, 주변 환경, 그리고 상황이 그것을 대신 보여주는 , 이런 것들은 단순히 춥고 힘들다는 의미 전달 이상의 것을 자꾸만 생각한다. 물론 대사가 없더라도 음악, 연출, 카메라 기법 등이 추가되면서 상황이 말해주는 바는 줄어든다. 하지만 그것이 인물들의 대화, 내레이션, 자막 등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보다 해석의 범위가 넓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아틱>의 주인공은 비행기 사고로 혼자 북극에 남은 '오버가드'. 영화는 그의 상황과 태도, 그리고 북극에서 살아남고 탈출하려는 그의 의지를 통해 외로움과 삶에 대한 집념, 인류애 등의 주제의식을 강하게 드러낸다. 주인공이 눈을 파 SOS를 만들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나가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 부상자를 데리고 멀리 떨어진 기지까지 가는 여정,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 삶을 증명하려는 그의 모습은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 놓인 인간에 대한 경외를 느끼게 한다.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를 모아 보면 종이 한 장도 안 나올 것이다.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인간의 몸과 자연, 그리고 그 이외의 것들로 설명된다. 인간의 몸과 정신에 대한 고찰, 그리고 자연에 대한 경외와 무심함을 나타내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굳이 따뜻하다고 하지 않아도 불 앞에서 환한 표정으로 동상으로 얼어붙은 손을 녹이고 그 불로 끓인 라면을 너무나 맛있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먹으면 된다는 것을 이 영화는 너무나 잘 그려낸다.


하얀 세계 위에 삶을 증명하는 검은 발자국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돈으로 명예로 혹은 글로 영상으로 비석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혹은 살아있었음을 기록하고 남기려 한다. 그럼 그걸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북극에선 어떨까? 내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남기는지에 대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사람은 살아있음을 자꾸만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할 것이다.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오버가드의 삶은 그것을 스스로 증명해내는 방법들로 채워져 있다. 살아있는 연어를 잡고, 땅을 파고, 신호를 보내고, 멀리까지 다녀온 길을 지도에 표시함으로써 자신이 살아있음을 자꾸만 증명한다. 그러던 중 자신을 구하려던 헬기가 추락한 후 어린 여자를 구해내게 되고 이때를 기점으로 오버가드는 더 이상 스스로에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자의 생사를 살피고, 그것을 위해 먼 길을 떠난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삶의 목적인 것처럼.


모든 걸 집어삼킬 것 같다가도 금세 잠잠해지는 이 무심한 하얀 세계에서 자신의 삶, 그리고 어린 여자의 삶을 증명해내기 위한 오버가드의 여행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진다.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붉은 꽃 같은 희망, 영화의 모든 요소는 단 하나의 주제를 향해 굳건히 나아간다. 그리고 그건 최초의 인류가 만나 나눈 최초의 사랑처럼 아름답게 그려진다. 죽어가는 사람의 입을 빌어 뱉는 단 한 마디, 그 한 마디를 위해 <아틱>은 주인공에게 모든 고난을 선사한다.


영화에서 여자는 단 한 마디의 대사밖에 하지 않는다. 'Hello'. 죽어가는 여자를 버리고 가려는 오버가드가 다시 돌아와 들은 말, 그게 'Hello'라고 생각하면 역시나 삶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You are not alone', 이 한 마디는 주인공이 왜 그토록 삶에 집착하는지 그리고 사람이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를 조금이나마 가늠하게 한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말이 주는 위안은 단어의 의미를 뛰어넘는다. 그것을 위해 영화는 주인공의 외로움과 고난을, 그리고 살고자 하는 의지와 투쟁을 보여준 것이다. 덕분에 'You are not alone'은 단정된 문장임에도 보는 사람마다 자신의 경험에 빗댄 해석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신호탄을 보지 못한 헬기를 위해 자신의 이름이 박힌 점퍼를 태워 흔드는 오버가드의 모습, 그리고 그것이 실패한 뒤 허탈함에 누워버리면서도 여자의 손을 잡는 그의 모습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이 사람을 살게 하는가 같은 대답할 수 없는 문제를 마지막까지 던져댔다. 삶의 의지가 소멸돼 재가 돼버린 인간이 얼마나 초라해지는지 직접 눈으로 보길 바란다. <아틱>은 아직 저녁이 쌀쌀한 이맘때, 지금이 딱 보기 좋을 때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종류의 추억 위에 세워진 잔혹동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