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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코는 왜 Apr 09. 2019

어떤 종류의 추억 위에 세워진 잔혹동화

연극 <나쁜자석>


사랑의 기원, <The Origin of Love>


29살의 폴과 앨런 그리고 프레이저


뮤지컬 헤드윅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꼽으라면 'The Origin of Love', 사랑의 기원이라고 말할 것 같다. 원래 하나였던 존재가 신에 의해 둘로 쪼개져 서로를 볼 수 없게 되고 다른 반쪽을 찾아 평생을 그리워하는 것. 그것이 노래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기원이다. 연극 <나쁜자석>의 가장 큰 주제 역시 신화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사랑, 사랑이다.


<나쁜자석>은 크게 보면 3개의 이야기 구조를 가진다. 첫 번째, 시간 순서대로 4명의 인물(고든, 프레이저, 폴, 앨런)이 등장, 성장하는 메인 스토리가 연극의 가장 큰 줄기다. 두 번째로 프레이저와 고든이 이끌어 가는 둘만의 이야기다. 우정을 뛰어넘은 두 인물만 공유하는 비밀스러운 이야기, 여기서 벌어진 일들은 메인 스토리에 있는 다른 2명의 인물(폴과 앨런)과 프레이저가 이후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가 된다. 마지막으로, 낄낄이라는 별명을 가진 고든이 들려주는 동화다. 동화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보이는 낄낄이가 직접 지은 것으로 연극 전체의 분위기와 주제의식을 강하게 나타내며 때로는 갈등상태의 다른 인물들을 싸우게 하거나 화해시키는 역할도 해낸다.


위와 같이 3개의 시간과 흐름을 가지고 있는 <나쁜자석>을 하나의 작품으로 묶고 이끄는 가장 큰 힘은 역시나 사랑이다. '고든'과 '프레이저'의 동성애, 폴과 앨런의 부인이 보여주는 비정상적인 사랑, 그중에서도 <나쁜자석>을 이끄는 고든과 프레이저의 사랑은 특별하다. 그렇기에 더욱 그것을 조심스럽게 다룬다. '어떤 종류의 추억 위에 세워진 잔혹동화'는 남은 사람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과 잊어야 하는 것, 떠난 사람이 남기고 간 것과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의 종류, <Kind of Love>


9살의 고든과 프레이저

이성애와 동성애, 바이섹슈얼과 게이, 레즈비언과 같은 것들은 모두 사랑의 종류와 형태를 이르는 말이다. 단순히 이분법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다분화되고 그것이 점차 인정받고 있는 추세에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다루는 것은 여전히 조심스럽게만 느껴진다.


그렇기에 연극은 사랑의 기원을 천천히 보여주고 그 위에 다른 사건과 상황들을 세운다. 고든과 프레이저의 사랑의 시작은 9살로 거슬러간다. 돌이켜 보고 나서야 사랑인 줄 알았던 것, 당시에는 의미를 갖지 못한 일들이 고든과 프레이저 사이에서 벌어지곤 한다. 유령이 나온다는 폐건물에서 둘이 나눴던 가벼운 키스, 그 이전부터 따지면 고든의 동화를 들은 프레이저가 고든과 함께 있고 싶어 하고 고든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들 모두. 그리고 그것들 사이사이에 시각적인, 감각적인 동성애 요소를 넣어 관객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어색함이 없도록 한다. 그만큼 섬세하게 동성애를 다룬다.

 

어떤 문제나 현상을 섬세하게 다룬다는 건 단순히 조심스럽게 다루는 게 아니라 현상 속에 숨겨진 본질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다루느냐에 대한 문제다. 그게 가장 잘 나타나는 장면은 고든이 휘발유를 들고 폐교로 들어가고 프레이저가 그걸 막으러 오는 장면이다. 거기서 프레이저와 고든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한 키스를 나눈다. 그리고 프레이저는 혼란이 온 듯 도망쳐버린다.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 알 수 없던 유아기를 거쳐 그것에 대해 혼란을 겪는 잔혹한 청소년기 혹은 성인식을 비참하리만큼 도드라지게 다루면서 연극은 그 문제를 사회적 화두로 던져낸다.


이 지점이 비록 전통적인 동성애적 시각(동성애임에도 한쪽은 여성의 역할을 부여받고 한쪽은 남성적인 이미지를 부여받는다. 고든은 섬세하면서 여성스럽고 프레이저는 당당하면서 남성스러운 것이 그것이다)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동성애를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단순히 섹스하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것에서 벗어나 한 편의 성장소설을 그리듯, 인물들이 아파하고 성숙해지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려간 사랑은 비록 둘만의 비밀로 끝나버렸지만 그것이 연극 밖 사람들에게 던져주는 화두는 고든의 동화처럼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반복되는 이야기, 동화로 기억될 추억


앨런과 고든, 프레이저와 폴

고든이 자살하고 프레이저는 무너진다. 폴은 고든의 동화를 엮어 세상에 내놓으려 하고 앨런은 기계를 만들어 고든을 기억하려 한다. 이 인물들에게는 참 신기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다들 결함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고든은 때로 발작을 일으키고 프레이저는 고든의 죽음 이후에 불안증세를 보인다. 폴은 앨런의 부인과 바람을 피우고 앨런은 부인이 자신의 아이를 갖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직접 듣는다.


스스로에 의해서 혹은 외부에 의해서 일종의 '장애'를 갖게 된 이 네 명의 인물을 묶는 건 우정도 사랑도 추억도 아닌 동화다.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동화는 그중에서도 특별한 방식이다. 동화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책을 통해서 전달되고 기억된다. 각자가 그 이야기 속에 자신을 투영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할 수 있고 그것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남은 세명의 인물이 고든을 기억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그것이 동화에 기반에 있다는 점은 다시금 죽어버린 고든을 주목하게 한다.


고든의 동화는 하나하나가 완벽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다. 그리고 그것이 연극에 녹아들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아간다. 그리고 동화는 고든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 또 방해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던져 부숴야 했던 자석의 이야기, <나쁜자석>을 들려주면서 절벽 끝으로 달려가 '나 나쁜자석이야'라고 외치는 고든의 모습은 내면으로 침잠하는 자신에 대한 다그침이자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겐 존재하지 않을 세상에 대한 반항을 보여준다. 또 <하늘 정원>은 연극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면서 관계의 회복, 극복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일관되게 전달하는 식이다.


결국 이 동화들은 책으로 나와 기억되고 계속 이야기될 것이다. 마무리를 장식한 <하늘 정원>의 이야기는 29살인 그들이 10년 후, 20년 후에도 이 이야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할 것임을 말해준다. 잊어버리려 해도 잊히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나름이지만 마냥 나쁠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 정원>에서 떨어진 씨앗이 땅에서 싹을 틔웠을지, 아니면 그냥 죽어버렸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고든이 절벽에서 떨어져 하나의 싹을 틔운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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