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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코는 왜 Aug 0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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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석 전시, <ALL WE HAVE IS NOW>


'아름답게' 흔들리기 위해서는
꽤나 계획이 있어야 하거든요
급박해서 흔들린 경우는
그 급박함마저 사진에 묻어나요


쓰고 있던 글이 잘 안 써질 때 새로운 자극을 받겠다고 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니곤 했다. 돈 써서 새로운 장소에 간 만큼 글이 잘 나오면 좋으련만 세상의 규칙인 듯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뭐라도 해야지 싶은 마음에 조급하게 글을 후다닥 써서 집에 가져와보면 정작 건질 문장은 한 두 개, 그것도 전체적인 얼개를 맞추다 보면 어딘가로 사라져 있기 일쑤다. 그렇게 사라진 문장들을 위해 수백 만원 정도 썼던 것 같다. 꽤나 비싼 수업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정작 그 새로운 장소에 가서 쓸 글만을 생각한 채 거기까지 가기 위한 과정, 그곳에서의 경험을 기록하려 하진 않았다. 그래서 분명 스쳐지나갔을 나의 순간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오늘은 작가의 제목 없는 사진마다 나만의 이야기를 하나씩 덧붙여보려 한다.


사진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찰나의 순간을 담기에 의도와 우연이라는 요소를 동시에 가진다. 경험을 서술한 글 또한 자신의 우연한 경험과 의도가 섞여 서술된다는 의미에서 사진과 작문은 같은 주제를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시된 표기석 작가의 사진들은 우연을 기반으로 작가의 의도가 살짝 덧붙여져 있는데, 제목이 없다는 점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현재'들은 그저 지나쳐 버릴 한 때가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모습에 머문 채 보는 이를 사로잡는 '전부'가 된다는 안내에 힘입어 조금은 허황된 나만의 이야기를 전시에 대한 답례로 살며시 들이밀어본다.


실수로 필름을 손상시킨 사진가가 그 필름이 아까워 그냥 사진을 찍어 인화했더니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 나왔다고 이야기한 기사를 본 적 있다. 나에게도 동묘시장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오래된 미놀타 카메라가 있었다. 하지만 카메라는 딱 내 기억만큼 녹슬었고, 필름을 산다면 한 통을 다 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메뉴를 고를 때도 하나만 고르지 못해 짬짜면을 시켜 먹는 나의 우유부단함은 여기서도 발휘됐다. 한참을 고민하다 필름을 주문했다. 다시 보니 적당히 '앤틱'한 카메라를 두고 나는 딱 절반만큼 대담하고 절반만큼 구차해지기로 했다. 유난히 더웠던 그해 계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자주색 커튼이 여름을 닫고 있었다.



밤을 훔쳐 강 위에 별을 띄웠다. 항상 너는 하늘을 바라 왔지만, 이젠 강 위에도 별이 있으니 더 이상 하늘을 볼 이유는 없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너는 더 이상 날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별이 없는 하늘을 어느샌가 강이라 불렀고, 강은 하늘이라고 했다. 네가 원하는 건 저 까맣고 깊숙한 물속에 있었으나, 막상 용감하게 물로 뛰어든 사람들은 너에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도 너는 끊임없이 별에 대해 말을 한다. 하지만 직접 나설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기에 너는 그저 더 가까운 곳에 별이 있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우리는 밤이라는 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됐다.



비 오는 날을 유난히 좋아했다. 사실 비 오는 날이 좋았다기보단 비 오는 날이면 세상 모든 게 예민해져 강하게 올라오는 그 냄새를 좋아했던 거지만 그 냄새가 나고 나면 어김없이 비가 왔으니 비를 좋아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지난해 유난히 비가 오지 않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을 때, 집 앞에 유일하게 있는 가로등이 고장 나 눈꺼풀처럼 깜박거렸다. 창문엔 이미 떨어진 빗방울이 가득했기에 나는 그 모습을 어림짐작할 수밖에 없었으나 가로등 주광빛을 닮은 낙엽을 밟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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