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기석 전시, <ALL WE HAVE IS NOW>
'아름답게' 흔들리기 위해서는
꽤나 계획이 있어야 하거든요
급박해서 흔들린 경우는
그 급박함마저 사진에 묻어나요
실수로 필름을 손상시킨 사진가가 그 필름이 아까워 그냥 사진을 찍어 인화했더니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 나왔다고 이야기한 기사를 본 적 있다. 나에게도 동묘시장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오래된 미놀타 카메라가 있었다. 하지만 카메라는 딱 내 기억만큼 녹슬었고, 필름을 산다면 한 통을 다 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메뉴를 고를 때도 하나만 고르지 못해 짬짜면을 시켜 먹는 나의 우유부단함은 여기서도 발휘됐다. 한참을 고민하다 필름을 주문했다. 다시 보니 적당히 '앤틱'한 카메라를 두고 나는 딱 절반만큼 대담하고 절반만큼 구차해지기로 했다. 유난히 더웠던 그해 계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자주색 커튼이 여름을 닫고 있었다.
밤을 훔쳐 강 위에 별을 띄웠다. 항상 너는 하늘을 바라 왔지만, 이젠 강 위에도 별이 있으니 더 이상 하늘을 볼 이유는 없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너는 더 이상 날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별이 없는 하늘을 어느샌가 강이라 불렀고, 강은 하늘이라고 했다. 네가 원하는 건 저 까맣고 깊숙한 물속에 있었으나, 막상 용감하게 물로 뛰어든 사람들은 너에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도 너는 끊임없이 별에 대해 말을 한다. 하지만 직접 나설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기에 너는 그저 더 가까운 곳에 별이 있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우리는 밤이라는 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됐다.
비 오는 날을 유난히 좋아했다. 사실 비 오는 날이 좋았다기보단 비 오는 날이면 세상 모든 게 예민해져 강하게 올라오는 그 냄새를 좋아했던 거지만 그 냄새가 나고 나면 어김없이 비가 왔으니 비를 좋아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지난해 유난히 비가 오지 않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을 때, 집 앞에 유일하게 있는 가로등이 고장 나 눈꺼풀처럼 깜박거렸다. 창문엔 이미 떨어진 빗방울이 가득했기에 나는 그 모습을 어림짐작할 수밖에 없었으나 가로등 주광빛을 닮은 낙엽을 밟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