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아트센터 전시, <있는 것은 아름답다>
아픈, 혹은 아팠던 사람은 보통 사진 찍기를 싫어한다. 자신이 기억하는 과거와 너무 다르게 초췌해져 버린 본인의 모습을 기록하는 과정은 너무나 낯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 병원에 오래 머물렀지만 그때의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사실 그래서 이 전시가 불편했는지도 모른다. 너무나 밝게 웃고 있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듯한 저 얼굴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부끄러웠기에 제대로 그 사진을 마주할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웰빙, 즉 잘 사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웰다잉,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흔히 호상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자그마한 위안을 얻는 것 또한 웰다잉을 긍정적으로 인식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삶보다 가까운 죽음을 직감한 사람들, 더 나아가 죽음을 초월한 사람은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는 모양이다. 삶을 살아가는 내가 웃는 것과 삶을 버티거나 혹은 죽음을 기다리는 그들이 웃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전시는 사진과 사진의 주인공이 쓴 글이 같이 전시돼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편지를 쓴다면 흔히 유서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야기하는 건 삶, 그들의 삶, 우리의 삶, 전체의 삶이다. 살아온 것에 대해 후회하기도 하고 기뻤던 일을 떠올리기도 하고 신에게 기도하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의 본질에는 삶에 대한 경외가 담겨 있다.
그리고 다시금 사진을 바라본다. 전시장 가운데를 중심으로 사진들은 모두 관람객을 응시한다. 나를 둘러싼 사진, 그 속에서 정면을 응시하는 그들은 나를 지켜본다. 정작 자신은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앞날을 지켜봐 주겠다는 듯이. 죽음의 문턱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이 보내는 위로는 죽음마저도 초월한 삶의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현대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그들의 초상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있는 것은 아름답다' 전시의 본질은 죽음을 통해 우리의 삶을 환기하는 것이 있다. 당장 눈 앞으로 다가온 죽음 앞에서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과거를 끄집어냄으로써 사진 속 그들에게는 과거, 우리에게는 현재인 그 시점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에 대한 대답으로 작가는 삶의 연속성에 대해 고찰한다. 사람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자연물, 구조물들을 주목한다. 그것들의 연속성을 찾아 이어가며 우리 주변에 있는 삶, 그리고 그것의 중심에 있는 우리의 삶을 주목한다. 사방면으로 둘러싸인 삶의 가운데에서 전시를 관람하면 우리는 스스로 삶의 중심으로 뛰어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착각하지는 말기 바란다. 우리는 주인공이 아닌 그것들의 일부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