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차 타고 드라이브하며 봄꽃 구경 시켜드려야지’ 했던 할머니는 금요일에 넘어지시더니 이 긴긴 벚꽃을 하나 보지도 못하고 꽃이 질 무렵 함께 지셨다.
나는 집에 남아 할아버지의 진지를 챙겨야 해서 장례식장에 뒤늦게 가게 되었는데 집에 있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방문을 열면 내가 외면하고 있는 할머니가 있을 것 같은데 이젠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따금씩 할머니께 호박죽을 해주시던 이웃집 할머니께서 장례식장에 오셨다. 할머니께서 임종 전에 찾으셨다고 하니 “난 그래도 정말 할 만큼 했어.”라며 딱 잡아떼셨다. 나도 내가 저러고 있을 줄 알았다. 딱 내가 예상하고 있었던 내 모습이었다. 그런데 웬걸, 눈에 실핏줄이 다 터지도록 울었다. 소리 없이 숨죽여 우는 내 모습에 남들도 안쓰럽다며 울었다. 별 이유도 없었다. 뭐가 생각나서도 아니고 그리워서도 아니고 그냥 눈물이 자꾸 났다.
여자는 남은 음식이나 먹는 거라던 할머니와 고3부터 8년을 같이 살았다. 할머니가 입맛 없다며 밥을 한술도 뜨지 않으면 할아버지와 아빠는 내게 대용할 음식을 뭐라도 갖다 드려야지 뭐 하고 있냐며 꾸짖고, 그러면 나는 할머니가 드실 수 있는 부드럽고 맵지 않은 음식을 만들고. 그게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여서 집을 나가기도 여러 번. 그런데 그 음식들이 자꾸 생각이 났다. “네가 만든 음식은 다 맛있어. “ 라며 드시던 할머니. 이제는 할머니 상을 따로 차릴 필요도, 할머니를 위한 음식을 할 필요도, 외출했다가 들어가는 길에 할머니 드릴 간식을 사갈 필요도 없구나. 나의 몸이 편해진 그 사실이 역설적이게도 나를 슬프게 만든다.
명절마다 여행 다니는 가족을 부러워했던 나는 어느새 여행을 다니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이젠 할머니, 할머니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