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 가족이 처음 맞이하는 아이들의 방학이 되었다. 호주는 면적이 넓어서 갈 곳도 많지만 또 그만큼 준비를 하고 가야 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방학 동안 한 지역씩은 다녀야 웬만큼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급한 마음에 우리는 일단 뉴질랜드 북섬 여행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휴가에 뉴질랜드 북섬에 가요'라고 얘기하면 대부분 '뉴질랜드는 호주나 너무 비슷하지 않아?', '북섬보다는 남섬이 더 좋은데.'라는 반응이 많아서 우리가 잘못 결정한 걸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뉴질랜드는 호주와는 또 느낌이 다르고 조용하고 목가적이며 여유로웠다. 자동차로 이동하다 보면 끝없이 펼쳐진 초록의 초원과 소와 양만 계속 보게 되는데 이 또한 평화롭고 힐링이 되었다. 뉴질랜드 북섬에서는 사람보다 소와 양을 몇십, 아니 몇백 배는 더 본 것 같다.
시드니 공항에서 오클랜드 공항까지 비행시간은 약 3시간 반이고 시차는 3시간이다. Term 3 방학에는 호주의 공휴일인 노동절이 있다. 노동절을 기점으로 시드니에서는 서머타임이 적용되어 1시간 일찍 시작하게 되는데 우린 그 점을 생각 못하여 여행을 마치고 시드니로 돌아올 때 잠시 시간 개념이 혼란스러웠었다.
서울에서 제주도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 편과 숙소를 예약하고 렌터카를 대여하고 뉴질랜드로 출발하였다. 자정 무렵 도착한 뉴질랜드의 첫 느낌은 너무 춥다였다. 그동안 시드니의 추위를 보내고 막 따뜻해지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다시 그 추위로 되돌아간 느낌. 막연히 뉴질랜드 날씨나 시드니 날씨나 비슷하지 않겠냐고 생각하고 준비해온 우리는 다음날 아침 겉옷 하나씩을 구입해야 했다.
뉴질랜드 북섬 여행 1일 차 : 해밀턴 가든 - 호비튼 무비세트 - 민박집 숙박
오클랜드에서 2시간 정도 자동차로 달려 해밀턴 가든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가장 비싼 비용을 지불한 호비튼 무비세트 관람 시간이 오후 3시로 예정되어 있어서 해밀턴 가든은 잠시 1~2시간 정도 유명한 테마 정원만 관람하려 하였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물론 경치는 좋았지만 한적한 호수가 있는 길을 따라 걷다가 한참만에 테마 정원을 찾아 들어갔다. 중국정원, 이탈리안 정원, 인도 정원, 모던 정원 등등 넓고 규모 있는 정원들이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정성껏 관리되고 있어 보기 아름다웠다. 시간 여유가 많았다면 오래 더 여유롭게 거닐고 싶었지만 아이들과 후루룩 보고 호비튼 무비세트로 출발하였다.
호비튼 무비세트는 미리 홈페이지에서 입장권을 예매했으며 개별적으로 관람은 불가하고 가이드와 함께 한 그룹씩 버스를 타고 들어가 호비튼 마을에 내려 구경하게 된다. 버스를 타고 목장으로 들어가는데 바로 옆에 양과 소들이 늘어있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나치는 경험도 정말 근사하였다. 소들이 버스가 지나갈 좁은 길을 버티고 서있으면 소들이 옆으로 비켜줄 때까지 기다렸다 지나가기도 했다. 호비튼 마을 입구에 내리면 수많은 꽃들이 먼저 반겨주고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갈수록 정말 아기자기한 그림 같은 마을의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이동은 계속 가이드와 함께하는데 사진 찍을 시간도 충분히 준다. 우리가 간 날은 보슬비가 계속 왔는데 잠시 비가 멈췄을 때 무지개가 떠서 이 마을이 더욱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호빗들의 집 앞에는 그 집이 무엇을 하는 호빗의 집인지 알 수 있는 연장들이 디테일하게 전시되어 있기도 하고 호빗 옷이 빨랫대에 걸려있기도 한데 하나같이 귀엽고 아기자기하여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마을을 한 바퀴 다 돌고 나면 나오는 식당이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호빗들이 마시는 생강차를 한잔씩 나눠준다. 보슬비에 젖은 사람들은 식당에 있는 벽난로로 모여들어 옷도 말리고 몸도 녹이다가 시간 맞춰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나가며 투어가 종료되었다. 비싼 입장료였지만 와볼 만한 곳이었다.
이 날 숙소는 해밀턴 외곽에 있는 민박집이었는데 초원을 가르고 들어가 맞게 가고 있나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곳에 위치한 저택이었다. 주인아줌마가 거처하는 방이 따로 있고 나머지 방을 하나씩 빌려주는데 기대 외로 너무 고급지고 잘 정리되어 있어서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주변에 집이 없고 초원이라 밤에 정말 칠흑같이 어두웠고 내생에 처음으로 셀 수 없을만큼의 엄청난 별들을 볼 수 있었다. 다음 날 출발 전에 주인이 밖에 있는 조랑말한테 주라고 당근을 썰어서 나눠주어 아이들과 잠시 즐거운 시간도 보낼 수 있었다. 민박집이라 걱정했는데 호텔보다 몇 배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