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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 Sep 03. 2022

#38 그저 바위 하나 보러 가는 여행_퍼스(1)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1일 차: 퍼스 도착


 그렇다. 우리는 이틀 전 최악의 여행을 하고 와서 또다시 퍼스로 향했다. 여독은 전혀 풀리지 않은 것 같고, J*항공사의 충격적인 결항사태에 대한 후속조치(결론적으로 경비는 보전받지 못하였고, 위로금으로 티켓 구입 시 사용할 수 있는 크레딧을 받았지만 더 이상 사용할 일이 없을 듯하다)도 아직 하지 못했는데 어쩔 수 없이 지친 몸을 이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오랜 시간 같은 호주 하늘 아래에서도 갈 수 없었던,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이다. 퍼스가 주도인 WA주는 코비드 때문에 주경계를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최근 코비드 확진자가 다시 치솟을 때도 다른 주들은 예전과 같이 강력한 봉쇄조치를 하지 못하였지만 자원이 풍부하여 재정이 풍부한 것인지 WA주는 첫 코비드 확진자 발생 때부터 계속 주경계를 꽁꽁 닫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초 코비드 백신을 3차까지 접종하고 주정부에 미리 출입 승인받은 사람만 진입할 수 있게 했다가 드디어 지난 부활절 연휴 즈음부터 모든 제한 조치를 철회하였다.      


 이전부터 퍼스에 여행 가려고 시도했지만 코비드로 한차례 취소하였고 그로 인해 J별 항공사 크레딧을 받아서 미리 예약해둔 터였다. 2주 간의 짧은 방학 동안 여행을 2번 하는 건 힘든 계획이었다고 후회하면서 여행 가면서 이렇게 설레지 않고 숙제하러 가는 느낌이 드는 건 처음이라고 투덜대면서 비행기에 올라탔다.      


 사실 WA주는 우리가 지내고 있는 NSW주와는 뭔가 또 다른 느낌인 것 같아서 가고 싶은 장소가 많았다. 정말 신기하다는 핑크 호수도, 오팔 광산도, 돌고래가 해변까지 찾아온다는 샤크베이도, 그리고 남편이 그렇게나 보고 싶다던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난다는 곳도 가보고 싶었지만. 렌터카 여행을 계획하다 보니 가고 싶은 장소들이 너무나 큰 땅덩어리 여기저기에 분포해 있어서 운전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장롱면허라서 오롯이 남편 혼자 운전해야 했다. 그래서 나름 운전 최단 거리가 되도록 6박 7일의 일정을 잡아보았다.      


 떠나기 전, 남편의 직장에 퍼스에서 살다오신 분이 계신다 하여 맛집이나 꼭 가볼 곳을 물어보라고 했는데, 퍼스에 사셨음에도 우리가 가려는 칼바리 국립공원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하신다. 심지어 “거기 그냥 바위 하나 있는 거 아니에요? 그거 보시려고요?”라는 우리의 기대감을 꺾는 충격적인 말씀까지. “아, 그런 거 보는 게 의미 있는 거죠. 하. 하. 하” 급한 수습을 하셨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이번 여행 결과를 먼저 살짝 얘기하자면, “그 바위 하나는 충분히 보러 갈 의미가 있다”라는 것이다. 단순히 바위 하나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결과만이 아니라 찾아가면서 우리 가족이 함께 본 거대한 자연과 함께 부대끼며 보내는 시간들이 의미 있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문제의 그 바위_Nature's Window


 그 어느 때보다 길게 느껴지는 약 5시간 정도의 비행 끝에 우리는 드디어 WA땅을 밟았다. 이번 여행의 처음과 끝에 우리를 당황시킨 것은 렌터카 업체의 서비스였다. 오후 4시 정도에 도착하였는데 렌터카 업체는 3시에 문을 닫는다면서 추가 비용을 50불인가 요청했다. 지금 연휴 시즌인데 렌터카 업체가 이렇게 일찍 문 닫는다고? 게다가 추가 비용? 하지만 여행할 때는 바가지요금을 좀 지불할 수도 있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불하고 엄청 깨끗한 4륜 구동 차량을 받아 기분 좋게 달렸다.      

4륜구동만 들어갈 수 있다는 팻말을 보고 들어갔으나, 혹시 어딘가에 빠져 골치아픈 상황이 발생할까봐 소심하게 나름 평지만 달리다 나왔다.


 퍼스라는 도시의 첫인상은 마치 수도인 캔버라처럼 엄청 깨끗하고 구역이 잘 계획된 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오지여행을 시작하는 만큼 첫날은 생수와 한국식품, 간식거리 등을 잔뜩 사서 차에 싣는 것으로 시작했다. 첫날의 숙소는 크라운 호텔이었는데 아마도 퍼스에서 가장 화려한 호텔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여행할 때 이렇게 고급 호텔에서 지내지 않는데 왜 이런 고급 호텔을 예약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계속 예약했다 취소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또 취소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루쯤 예약해보자 하고 했던 것인지 우리도 의아했다. 아이들은 화려한 호텔에 흥분했고 하룻밤을 정말 편안하고 럭셔리하게 보낼 수 있어서 나름 힘든 지난번 여행의 피로감을 희석시킬 수 있었다. 남편은 혼자 호텔에 있는 카지노에 50불을 가지고 가서 100불을 벌어왔다고 좋아했다.

     

 첫날 호텔에 돈을 쓴 보람이 있었다. 우리는 다음 날 다시 충전된 기분으로 오지 여행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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