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섬이라 해도 계속되는 폭우에 우리 가족은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시드니에서는 또다시 여기저기 홍수가 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어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어쩌나 어젯밤부터 걱정이 되었다. 늦은 오후에 돌아가는 비행기였는데 해밀턴 아일랜드에도 비가 심하게 오고 있어 마땅히 어딜 갈 수도 없어 체크 아웃 시간까지 방에 머무르다가 버기를 반납하고 호텔 로비에 죽치고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긴긴 시간이 지났고, 당연하다는 듯이 비행기는 2시간가량 연착되었지만 무사히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바쁜 공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앉은 지 1시간이 돼가도록 출발을 안 하는 것이었다. 결국 연료 뚜껑에 뭔가 부러져서 엔진이 켜지지 않는다면서 모두 내리라고 방송이 나왔다. 건너편에 앉아 있던 현지 남성이 고개를 숙이고 엉엉 우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당연히 대체 비행편을 근처 공항에서 보내주겠지 하는 상식적인 기대를 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모두와 함께 대기를 하고 있는데 공항 문 닫는다면서 나가라고 하고 문을 잠가버린다. 그러더니 근처 선착장에서 배가 대기하고 있다고 배를 타라고 한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짐 끌고 애들 끌고 배를 타러 간다. 앞서 가던 남자가 빗길에 정말 철퍼덕 넘어지신다. 내가 넘어진 것 마냥 서러웠다. 잠시 배를 타는 줄 알았는데 거의 2시간을 배를 타고 육지로 갔다. 뭔가 난민이 된듯한 느낌. 육지 선착장에서 또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숙소를 구하면 경비를 주겠다는 이멜이 왔다. 당황스럽게도 선착장에는 J*항공사의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사라지기 시작했다. 같이 벤을 불러 타고 2시간 떨어져 있는 공항을 가지 않겠냐고 제안해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왠지 멀리 이동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또 하염없이 기다렸다. 밤 9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선착장 직원이 요플레를 하나씩 나눠 주었다. 빵도 아니고 요플레.
해는 저물어가고 배를 타고 하염없이 육지로 이동(해밀턴아일랜드에서 에얼리비치로)
J*항공사에서 숙소를 마련했다면서 버스를 타라고 사람이 왔다. 이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숙소를 구했다고? 의심 가득 안고 따라갔는데. 두둥. 우리를 체육관으로 데리고 왔다. 매트를 깔고 자라는데 계속 내리는 비에 눅눅하고 체육관 안은 너무 춥고, 남편과 나 둘만 있다면 어떻게 시간을 때우며 버티겠는데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할까 봐 급히 빈방 있는 호텔을 검색하기 시작했으나 워낙 외곽지역의 관광지인 데다 연휴이다 보니 백패커 숙소 외에는 없었다. 안내해주던 남자가 친절하게도 아이들이 힘들겠다며 숙소까지 데려다주었다. 백패커 숙소는 정말 열악하였고 벌레도 많아 혹시 침대에 배드버그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고 이런 경험을 해본 적 없는 우리 아이들은 이곳에서 편히 앉아있지도 못했다. 저녁식사도 못했는데 이미 밤 10시가 넘었고 뭔가 구해먹기엔 비가 너무 쏟아져서 나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빨리 잠들면 배가 고픈 생각이 들지 않을 거라 말하며. 하루 동안 난민체험, 수재민 체험에 이어 이제 기아체험까지 하고 말았다.
수재민 체험 현장
다음날 아침, J*항공사에서 대체 비행 편에 대한 연락이 왔다. 이곳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메카이 공항에서 브리즈번으로 가는 오후 비행기를 이용하라고 한다. 그래서 브리즈번에서 시드니는 어떻게 가라는 거지? 우리는 이미 전날 해밀턴 아일랜드에서 출발하는 시드니행 캥거루 항공사 비행기 티켓을 구입한 상태여서 아침 일찍 다시 해밀턴 아일랜드로 되돌아 가는 배에 탑승했다. 우리와 같은 결정을 한 많은 승객들이 각자 이 충격의 밤을 보내고 선착장에 와서 서로 안부인사를 나누었다. 어젯밤 누군가에게 전화로 “J*가 우리를 f* 패리에 태워 dumping 했어”라며 울던 여자도 다시 만나 웃으며 안부를 물었다. 모두 힘든 시간을 같이 보낸 전우가 된 것 같았다.
그 후, 또다시 결항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느끼며 공항에 버티기를 오후 3시까지 하고 정말 힘겹게 시드니로 돌아왔다. 우리는 거의 J* 항공사 티켓의 두배 값을 지불하고 캥거루 항공사 티켓을 구입하였다. J* 항공사는 전화연결조차 되지 않고 이틀 뒤 어렵게 연결되었으나 미안하지만 항공사가 제공한 숙소와 비행 편을 이용하지 않았기에 경비를 보상해줄 수 없다는 안내를 들었다. 우리가 만 하루를, 예정에 없던 휴가를 하루 더 사용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걱정과 추위와 배고픔에 힘든 시간을 보냈고 수재민들이 머무를만한 체육관을 제공받고 느낀 충격에 대한 보상은 어쩔 것인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곳은 외국이고, 우리는 이방인인데, 아이들이 다행히 힘든 시간을 보냈음에도 아픈데 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것에 감사하고 있다. 아이들과 이런 농담도 나누었다. 더 무서운 게 뭔지 알아? 우리 이틀 뒤에 J* 비행기 타고 퍼스 가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