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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주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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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녕 Mar 01. 2024

낭만을 위한 삶은 옳은 것인가




벚꽃이 만개해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긴 머리에서 단발로, 생머리에서 펌으로, 오래된 머리를 새로운 헤어스타일로 바꾸고서는 제주의 남쪽 서귀포시로 이동해 봄의 냄새를 맡으며 유유자적 걷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다가오는 봄은 왠지 모르게 설레어지고, 나의 취향을 찾아 한걸음 더욱 닿을 수만 있을 것 같은 낭만의 계절이다.



제주도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서귀포시 중문.

남쪽에 위치한 만큼 태평양을 있는 그대로 맞닿을 수 있으며, 양팔 벌려 드넓은 바다를 힘껏 품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중문은 나의 낭만을 일으키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그곳에서 야자수가 핀 거리 사이로 나닐고, 해수욕장에 비친 햇살을 바라보며, 고운 모래사장 위에 앉아 있는 나는 스쳐가는 바람과 함께 잠시 일상의 부재를 느껴간다.


이렇게 하루를 낭만으로만 가득 채우면 얼마나 좋을까. 씁쓸하게도 인생은 낭만과 더불어 현실을 직시해야만 더욱 완성되어 가는 듯하다. 낭만세계의 꿈을 실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현실세계에서 부단히 노력하며 지탱해 나갈 생계수단이 필요했다. 본업을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제주의 외곽이 아닌 과외수요가 많은  제주의 시내에 자연스레 자리를 잡았고, 현재는 제주도의 북쪽인 제주시내에서 거주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학생들과 함께 학교의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을 위해 열심히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사라봉”이라는 곳을 올라가서 시내의 전경을 높은 곳에서 저 멀리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 순간 내 머리에 ‘쾅’하고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세상에나. 저렇게 다닥다닥 붙여있는 건물들과 좁은 골목들 사이로 내가 끼여 살고 있었다니. 도시에서의 삶이 마치 미로 속에서 사는 듯한 어지러움과 번잡함을 주는 곳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런 곳에서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서울과 같은 삶을 살려고 제주에 온 것은 아닐 텐데. 방향성이 한번 필요해 보인 듯했다. 지금 나의 삶은 서울에서의 아등바등한 치열함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였을까. 도시의 편리함보다는 다소 시골스럽더라도 번잡한 도시를 잊게 만들어주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건물들이 주는 빽빽함보다는 조금은 허전할지라도 자연의 냄새를 더욱 맡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다시 한번 귀찮더라도  제주에서의 두 번째 이사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살아보고 싶은 장소와 일터가 있는 위치를 두고서 거주지를 고민해 보면서 , 낭만과 현실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서는 대뜸 두 가지 모두를 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고민해 보았다. 나의 로망 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서귀포의 중문은 현실적으로 나의 일터와는 너무 먼 곳이었다. 왕복 90km는 거뜬히 달리며 출퇴근을 해야 했기에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체력도 이동시간도 주유비도 모두 고려해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과외스케줄도 이동을 최소화하는 시간표로 만들어보면서 머리를 쥐 싸매기도 했다. 스케줄을 짜보니 주 3회로 시내를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테고, 이동하는 운전실력에서도 이제는 제법 초보운전 스티커를 뗄 만큼 많이 늘은 상태가 되었고, 과외수업도 안정기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체력, 이동시간, 불편함만을 고려하면 되었다.



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일터를 우선순위로 잡고 살아간다는데, 나는 그 반대가 되었으니 이렇게 또 하나의 고민이 나를 사로잡는다. 낭만을 붙들기 위해 현실의 나를 조금 더 희생시키는 것이 맞는 것일지.  현실의 나를 위해 낭만을 제하고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일지.  설령 내가 중문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더라도 모든 불편함을 끌어 안은채 살아가는 낭만이 옳은 것인지 , 설령 내가 끌어안고 갈 불편함이 싫어 지금 있는 삶에 그대로 머무른다 해도 그 삶이 맞는 것인지. 낭만과 현실, 모험과 안정, 도약과 안주 그 사이에서 오늘도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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