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2월 30일 아침. 정신을 깨우고, 몸을 따듯이 데우고, 힘을 내기 위해 여느 때처럼 봉지커피를 뜯어 뜨거운 물을 부었다. 평소 같으면 커피잔의 따뜻함이 좋아 한참을 쥐고 멍하게 있다가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며 잠을 깨웠을 나. 그날은 달랐다. 잠시 커피잔을 들고 있다가 멀쩡한 커피를 싱크대에 쏟아 버렸다. 지긋지긋함. 애쓰고 싶지 않음.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소리없는 비명이었다.
내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시커먼 커피부터 몸 속에 들이 붓고 싶지 않아졌던 것 같다. 커피의 힘으로라도 억지로 버텨가며 정신 차리고 아등바등거리는, 그런 삶을 이제 더 이상은 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매일같이 내 몸과 마음과 정신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외쳐댔는데 오늘에서야 그 외침이 들려진건지도 모르겠다. 이제서야 말이다. 아니, 이제라도 들려서, 정말 다행이다.
깨달았다. 나, 변했구나. 변하는 데에 성공했구나.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아주 조금은 틔였구나. 여전히 감정은 무겁고, 몸은 피로하고, 정신은 뿌옇다. 예전엔 그게 다였다. 그런 상태이면서 소리 지를 줄 몰랐고, 소리 질렀더라도 들을 줄 몰랐다. 그날 아침도 여전했다. 몸은 천근만근, 감정은 어두움, 정신은 뿌연 상태였다. 그런데 그날 아침은 소리를 질렀고, 그것을 들었으며,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내버렸다. 그 시커멓고 들쩍지근한 봉지커피를.
그러고 나서 한 일은 이거였다. 주방 한 켠 가득 있는 온갖 종류의 봉지커피부터 시작해 봉지나 인스턴트용으로 된 차들을 모두 꺼내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율무차, 무슨 라떼, 녹차, 작두콩차, 카누, 붓기를 빼준다는 호박차, 쑥차 등 종류도 그렇게 많을 수 없었다. 좋다고 샀던 것들이고, 감사한 마음 가득 선물 받았던 것들인데 전혀 미련이 없었다. 후련했다. 다 버리고 나서는 냉장고에서 귤 몇 개를 꺼내 먹었다. 싱그러웠다.
귤을 다 까먹고는 굴러다니는 종이와 연필을 가져와 식탁에 앉았다. 마음 가는대로 썼다. 뭐든 써댔고, 그 끝에서 위의 시, <새싹의 마음>을 남겼다. 아무래도 나, 이제는 정말 다르게 살고 싶은 마음의 힘이 생겼나 보다. 우울과 무기력, 환멸감 같은 것들, 살고 싶지 않은 마음, 살고 싶지 않은데 살아야 한다고 했던 마음들... . 40 평생을 그렇게 살았는데... . 물론 그것이 봉지커피 한 잔 쏟아 버렸다고 완전히 다 바뀐 건 아니다. 그래도 지금은 그 앞에 이런 말들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마음,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했던 마음. 이라고.
그러고 보니 그날은 한 해의 마지막 즈음이었고, 오늘은 새해의 첫날 즈음이지 않은가.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름의 거창한 이름을 붙여 본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답하며 살아가겠다고. 아니, 좀 더 힘을 내본다. 아마 이건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걸 거라고. 다시 정제해 본다. 잘 살고 싶은 마음에 답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이런 놀라운 변화의 지점까지 오도록 나를 도운 것이 하나 있다. 그래서 여기서 좀 더 과감하게 용기를 내보려 한다. 독서를 기반으로 한 심리상담사 슈퍼비전 과정이다. 궁핍한 살림과 없는 돈을 나누고 쪼개서 슈퍼비전 과정을 신청했다. 나는 심리상담사도 아니고, 해당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민간자격과정을 수료한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재작년부터 시작한 이 공부를 계속해 오면서 나의 마음 어딘가가 정말 변화되었고, ‘커피끊기’를 통해 실제 삶의 방식도 변화함을 확인했는데 여기서 그만 멈추고 싶지 않아진다.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욕심이 난다. 그 욕심, 용기라 부르며 도전해 본다.
그래, 이 정도면 잘 준비된 것 같다. 2024년 한 해는 독서 기반 심리상담사 슈퍼비전 과정과 함께 하는 ‘잘 살고 싶은 마음에 답하기’로 살아보려 한다. 그 첫 발걸음은 커피 끊기였고, 금단증상인 두통으로 조금 고생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잘 해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경험상 알고 있다.이렇게 살아낸 한 해의 그 마지막 발걸음은 분명 지금과 다를 것임을, 분명 더 맑고 밝고 환해진 어딘가에 도착하게 될 것임을 말이다. 이건 믿음이 아니라, 사실이다. 재작년에도 그랬고, 작년에도 그랬기 때문이다. 2024년,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