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 브레이커
아빠에게서 차를 팔겠다는 연락이 왔다. 무릇 자동차란 계속 굴려줘야 되기 마련인데, 아빠가 베트남에 가 있는 동안 운전할 사람이 없어서 차가 방치되고 있었다. 게다가 보험료도 만만치 않게 줄줄 새고 있으니 어쩌면 아빠 입장에서는 그냥 파는 것이 맘 편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그 유명한 장롱 면허이다. 매년 신년 목표의 제일 첫번째 줄은 변함없이 ‘운전 연수’가 였다. 아빠 차가 주차장에 마냥 놀고 있는 순간부터 나의 뇌 구조에는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큼의 ‘MY CAR’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랬던 ‘MY CAR’를 떠나 보내야 한다니, 뇌에서 저절로 주판이 돌려졌다. 내 돈으로 저만한 중고차를 사려고 해도 비용이 꽤 들 텐데. 아빠도 차를 팔아버리면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차를 사야 할 때 더 큰 비용이 들 수도 있는데. 그냥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유리한 것 아닌가? 그동안 내가 타고 있으면 ‘일석이조’, 이런 게 바로 아빠 좋고 딸 좋고 아니겠는가. 유레카!
“아빠! 내가 올해는 꼭 연수 받을 테니까 차 팔면 안 돼!”
그렇게 아빠 차를 빼앗아 버렸다.
평소라면 상상할 수도 없었던 애교를 팍팍 양념 쳐가며 ‘MY CAR’를 얻어내고 나니, 이상하게도 어딘가 개운치 않은 구석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단 한번도 아빠를 조수석에 앉게 해준 적이 없다.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하다못해 친구들이랑 술 한잔하고 집에 돌아올 때라도 데리러 나갔으면 좋았을 텐데. 내 차는 고사하고, 아빠 차이더라도 한 번쯤 태워줬어야 했다. 어디든 차로 데려다준 적이 없다는 사실에 새삼 죄책감이 일었다. 반면에 아빠 인생 주행거리의 40% 정도는 아마 나의 몫일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마지막 기말고사를 하나 남겨두고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것도 학교 앞에서 일어난 사고라 학교에서도 꽤 심각하게 논의 될 만큼 큰 화제였다. 당시에 아빠는 안성에서 일하고 있었던지라 주말에만 집에 오곤 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아서 나는 아빠가 올 수 없으니 엄마에게 연락을 해달라 또박또박 말할 수 있었고, 담임이 함께 구급차에 올라 엄마에게 전화했다.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지금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고 있고, 의식은 있습니다.”
의식‘은’ 있다는 담임의 말에 엄마는 거의 실신 직전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랐던 엄마는 아빠에게 바로 전화했지만, 안성에서 당장 오려고 해도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아빠는 우선 본인의 친구에게 연락해 나와 엄마를 부탁했다. 곧이어 아빠가 급하게 휴가를 내고 달려왔다.
아빠는 괜한 자책을 했다. 하필 교통사고의 상대방, 나를 차로 치어버린 운전자가 바로 같은 학교의 학부모였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학교 끝나는 시간(야자 때문에 하교 시간이 밤 10시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여학생들을 그 늦은 밤에 귀가시키다니, 정말 대책없는 교육과정이다.) 에 맞춰 엄마가 마중 나왔다. 아빠는 나에게 그렇게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무척 미안해했다고 엄마가 슬쩍 귀띔해줬다. 나를 잘 키워보려고, 더 많이 가르치고 좋은 걸 주고 싶어서 멀리 타지에 가서 일하는데, 정작 내가 커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기 딸 옆에 있어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빠를 괴롭혔나 보다. 그 길로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후로 고3 졸업할 때까지 하굣길에는 매일 아빠가 함께였다. 회식하는 날이면 대리운전 기사를 데리고도 오고,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회사 동료와 함께 오기도 했다.(늦은시간 학교 앞에서 함께 저를 기다려주신 분들 사죄드립니다.) 가끔은 같은 반 친구들도 태워주기도 했다. 괜히 어깨가 들썩들썩하며 엄청 뿌듯했다. 아, 정말 나 엄청나게 사랑받았구나.
따지고 보면 장롱 면허도 아빠 덕에 딸 수 있었다. 교통사고의 트라우마인지 운전면허 시험에 연이어 낙방했다. 계속 학원에 다니기도 민망해 뭉그적거리고 있으니, 아빠가 연수 강사를 자처했다. 아빠가 아니었다면 이력서 자격증란에 운전면허조차 없이 빈칸으로 제출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면허증을 손에 쥔 이후 한 번도 운전석에 앉아본 적이 없다. 강원도 외갓집에 갈 때나, 우리 모녀가 좋아하는 멍게를 먹으러 통영에 갈 때, 외국인 친구 사브리나를 데리고 경주에 갈 때. 단 한 번이라도 교대 해줄 만 한데, 운전을 하지 못하니 항상 아빠가 독박 운전을 해야 했다. 눈과 어깨 주변으로 덕지 덕지 붙은 피곤 덩어리를 보면서도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옆자리에서 잠에 들지 않는 것 뿐이었다.
아직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겨우 출,퇴근 하는 정도이지만 드디어 운전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빠가 한국에 돌아오면 차를 돌려준다는 계획은 지키지 못할 것 같다. 대신, '범퍼카'라는 귀여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빠에게는 안 보여주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운전이 능숙해 질 때면, 진짜 'MY CAR'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우리 세가족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러 다니고, 좋은 것도 많이 보러 다니고 싶다.
아빠, 나 차 뽑았다. 지금 데리러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