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by 선영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빠 차에 시디플레 이어가 없어 테이프를 잔뜩 싫고 다니던 시절의 어느 날이 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기타의 선율에 귀가 번쩍 뜨였 다.

“아빠, 이거 무슨 노래야?”

아빠는 곧바로 답을 해주었다. 에릭 클랩튼의 ‘Tears in Heaven’이었다. 일찍 하늘로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면서 만 든 노래라며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덧붙여 주었다. 그전까지 아빠는 트로트만 듣는 줄 알았다. 항상 양손의 엄지를 들고 엉덩이를 살짝 뒤로 빼고 흔들며 ‘그건 너, 바로 너!’ 하고 외치는 것이 아빠의 트레이드 마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팝송, 그것도 허스키한 목소리의 ROCK을 듣는 것도 모자라 그 곡에 얽힌 사연까지 줄줄 쏟아내는 모습이라니. 내가 알던 우리 아빠 맞나? 아빠의 새로운 모습에 신선한 문화 충격을 받았다. 그제야 책상 서랍 한 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름 모를 테이프들이 떠올랐다. 아빠에게도 영어 가사를 외우며 따 라 부르던 날들이 있었을 테지.


그날 이후 아빠 차에 탈 때마다 자연스럽게 에릭 클랩튼의 테이프를 플레이시켰다. 어느새 ‘Layla(라일라)’나 ‘Change the world(체인지 더 월드)’ 같은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될 정도였다.


“아빠, 나는 전주의 기타 소리가 너무 좋아. 이상하게 뭔가 가슴을 막 울려.”

“아빠, 가수가 노래 부를 때 막 괴성 안 지르고 다 같이 따라 부르는 거 들었어? 너무 듣기 좋다.”


차 안에서의 작은 감상회는 자주 열렸다. 엄마는 알지 못하는, 아빠와 둘만의 시간이었다. 아빠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둘 사이를 채우는 공기가 한층 따스해진 듯 느껴졌다. 어쩐지 아빠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은 마음에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동시에 다락방에 숨겨진 아빠의 보물 상자를 열어 본 어린 아이가 된 것도 같았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에릭 클랩튼이 내한공연을 왔다. 서울 이모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길을 걷다 에릭 클랩튼의 내한 공연 포스터를 보고는 나도 모르게 ‘꺅’하고 소리를 질렀다. 에릭 클랩튼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우쥬노마이네임(Would you know my name' 하고 시작되는 노래의 첫 소절을 들어보면 ‘아, 이 노래!’ 할 것이다. 이렇게나 유명한 세계적인 가수가 한국에 온다니! 그것도 아빠가 유일하게 듣는(들을 것으로 추정되는) 팝가수라니! 마침 아빠 생일이 가까워져 오기도 해서 선물로 딱 이다 싶었다. 아마 이건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 달 아르바이트비를 탈탈 털면 아빠, 엄마 두 사람의 몫으로 2, 3등석 정도는 가능하지 싶었다. 아빠가 얼마나 좋아하고 고마워할까. 얼마나 뿌듯해할까 생각하며 얼른 전화했다. 연결음마저 설레었다.


“일등석 아니면 안가.”
아빠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쟁반으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혼미했다. 그 당시 아르바이트로 용돈 벌이하는 게 월 3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일등석 한 장이 18만. 그러면 예산 초과인데? 이등석이라 하더라도 한 장에 15만 원이니까, 그 정도면 나로서는 꽤 큰 결심이었다. 재차 묻는 나에게 아빠는 초지일관이었다.

“일등석. 앞자리.”

아빠는 내 마음도 몰라주고. 태생부터 애교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던 나는, 있는대로 빈정이 상해서 수화기에 대고 뾰족하게 내뱉었다.

“그럼 가지 마!”


아빠는 왜 일등석 아니면 안 간다고 했을까? 나에게 부담 주기 싫어서였을까?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아빠가 왜 일등석을 고집한 이유가 궁금하기 보다, 아빠에게 진심을 거절당한 것 같아 서운한 마음에 투덜대기만 했다. 이 글을 쓰다 무심코 엄마에게 말했더니, 생각지도 못한 이유를 듣게 되었다.


생애 처음 뮤지컬 보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넌센스'였다. 수녀복을 입고 노래하던 배우들, 이벤트였는지 무대 위 로 올라가던 관객들. 꿈인듯한 그날을 아빠는 조금 다르게 기억했나 보다. 청주에서 뮤지컬 공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빠는 큰 기대없이 예매를 했고, 자리는 2층 뒤쪽이었다. 그날 공연은 빈자리가 꽤 있던 덕에 나는 한 칸씩, 한 칸 씩 앞으로 전진했다. 결국에는 2층 난간을 꽉 부여잡고 몸이 튀어나갈 듯 무대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앞자리로 할 걸 그랬네.' 아빠에게 또 하나의 아쉬움이 쌓였다.


아빠는 우리 세 가족이 다함께 앞자리에 앉아 공연을 즐기고 싶었을 것이다. 아빠의 마음도 모르고 뭐가 그렇게 서운하다고 토라졌을까. 이등석이든 삼등석이든 티켓을 사서 아빠 손에 쥐여줘야 했다. 일등석 티켓을 사기엔 용돈이 부족하니 모자라는 부분 은 아빠가 좀 보태달라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 거였다. 이제와 남은 것은 발목을 잡는 후회뿐이다.


에릭 클랩튼이 다시 한국에 와서 공연하는 날이 올까? 나는 아빠의 인생에서 에릭 클랩튼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 아빠의 젊은 날의 추억도, 우리가 함께 쌓아 온 추억도 흐릿하게 흩어져버렸다. 만약 아빠와 에릭 클랩튼 의 공연을 보러 갔었다면 그 추억들을 두고두고 얘기했을 테지. 따뜻했던 시간을 내 손으로 흘려버린 것만 같다. 발목에서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는 후회 덩어리들이 이따금씩 머리 끝까지 휘덮어버리며 존재를 과시한다.


이렇게 흘려 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함께하자고 약속했던 유럽 여행도, 한라산 등반도, 하다못해 가족사진을 찍는 소소한 일들까지.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주어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미루지 않고,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아쉬움과 후회 대신 추억들을 차곡차곡 쌓아갔으면 좋겠다.


아빠가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재즈 페스티벌도, 송가인 콘 서트도 꼭 다 같이 갑시다!




이전 14화축하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