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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Sep 26. 2022

쓸데없이

당신의 안녕을 바랍니다 02

 다들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는 장례식장에서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제 기억에 온전히 존재하는 장례식은 딱 두 번이었습니다. 한 번은 친할머니의 장례식이었고 다른 한 번은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이었어요. 외할아버지와는 친밀한 관계까지는 아니었고, 많이 바빴던 시기라 뚜렷한 기억은 없지만 친할머니의 장례식은 제법 선명한 기억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으니까요. 할머니와의 마지막 기억이 할머니께 툴툴거렸던 기억이라 그게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를 그토록이나 아껴주시던 할머니와의 마지막 순간이 그런 시간이었기 때문에요. 그래서 자꾸자꾸 그 마지막 순간을 곱씹고, 할머니와의 시간들을 곱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제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그리고 말은 바로 '쓸데없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쓸데없이 영정사진이 너무 예쁘고, 쓸데없이 우리 막내는 너무 어리고, 쓸데없이 날씨가 너무 좋고, 쓸데없이 장지가 너무 멀고, 쓸데없이 잠이 오는구나'라는 생각이 장례를 치르고 그리고 발인을 마친 다음날까지도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제 손님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과 둘째가 손님맞이를 하는 동안 저는 주로 빈소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근데 그 빈소에 위치한 막내의 사진이 참으로도 어여쁘디 어여쁘더라고요. 그 사진은 사진 찍는 것을 썩 즐기지는 않던 막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사진이었습니다. 나중에 빈소에 찾아온 친구들이 그 사진을 찍은 날의 막내를 이야기해주더라고요. 무슨 립스틱을 썼고 저 사진을 찍고 얼마나 자랑을 했는지. 제 증명사진을 엄마 핸드폰 배경으로 떡하니 해둘 정도였으니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는 저도 알았는데 그 사진이 빈소에 덩그러니 어색한 국화와 그것보다 더 어색한 검은 리본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는데. 그게 너무 생경한 모습이라 괜스레 홀로 그 빈소를 지키며 자꾸 막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좋겠네 우리 막내, 사람 엄청 좋아하는데 친구들이 엄청 많이 왔어'라는 이야기도 괜히 건네 보고 '언니 안 보고 싶어? 언니는 벌써 너무너무 보고 싶어'라는 이야기도 괜히 건네봤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을 걸다 보면 자꾸 제 머릿속에는 '쓸데없이 사진이 너어무 예쁘다'라는 생각이 들고는 했습니다. 막내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예쁜 모습으로 남으면 그건 참 좋은 일일 텐데 말이에요.


 장지에 가는 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참 맑기도 맑은 따뜻하기도 따뜻한 가을 하늘이었는데 그게 참 야속했습니다. 아빠를 대신해서 막내의 영정사진을 들고 앞서가 맨 앞에 홀로 사진과 함께 앉아있는데 해가 참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 들어와 있었습니다. 우리 막내 해 별로 안 좋아하는데 싶다가도 그 햇빛에 살짝 액자가 따뜻해져서 그 사진 속 얼굴을 한참을 만지작거리면서 우리 막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한참이고 하며 장지로 향하는데 그 길이 참 멀기도 멀더군요. 그곳에 도착해 화장하는 시간을 기다리는데 참 시간이 안 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자꾸 꾸벅꾸벅 잠이 오는데 저의 그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참 쓸데없이...'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생각합니다.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은 채 저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고 쓸데없이도 예쁜 우리 막내의 사진은 방 한편에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시간을 그 순간을 어떤 생각을 하며 보내는 것일까요. 참 쓸데없는 시간을 잘도 흘러 어느새 또다시 한번 밤이 찾아왔습니다. 내일은 이 쓸데없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을까요.


 조금이라도 내일은 가벼운 생각으로 흘러 보낼 수 있는 저의 그리고 당신의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22.09.26 서늘한 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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