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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Sep 25. 2022

나는 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당신의 안녕을 바랍니다 01

    어렸을 때부터 저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참 별것은 아닌데 그냥 제 존재의 가치를 더해준다고 여겨지던 그런 것들이 요. 하나는 저의 부모님의 직업이 그랬고, 다른 하나는 딸만 셋인 딸 부잣집의 큰 딸이라는 점이 그랬습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가족신문을 만들어오라는 숙제가 떨어지면 우리 집 가족신문의 제목은 늘 딸 부잣집이었습니다. '남들은 아들 낳으려고 그랬나 보구나'라고 하고는 했지만 글쎄요, 저에게는 둘이나 있는 여동생들이 참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5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막내 동생은 더욱 더요. 막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일을 하셨기 때문에 막내는 꼭 제게는 딸 같은 동생이었어요. 아마 바로 밑의 동생인 둘째가 들으면 섭섭해할 이야기지만 연년생인 둘째와는 늘 다투는 관계였던 것에 비해 막내는 제가 빠른 년생이라 늘 학년이 같았고,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면 둘이 깜짝 놀랄 만큼 닮아 있었고, 그리고 저를 참 많이 따랐는 데다 다투는 둘째와 달리 성향도 비슷해서 늘 둘이 친하게 지내는 그런 관계였습니다. 크면서 참 속을 많이 썩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같이 투닥거리며 장난도 칠 수 있고 함께 하고 해온 것도, 함께 하고 싶은 것도 많은 그런 동생이었어요. 


 그리고 지난 월요일 이제 우리 집은 더 이상 특별하지가 않게 되었습니다. 아, 다른 의미로는 특별해졌다고는 할 수 있겠네요. 견뎌야 했습니다. 나는 동생을 잃은 거지 진짜 내 딸을 잃은 게 아니니까요. 처음으로 겪는 가족의 장례식은 참 정할 것도 할 일도 많더군요. 사실 첫날 선뜻 누구에게도 전화하지 못하고 이 브런치에 들어와서 토해내듯 글을 썼습니다. 그렇지만 차마 발행은 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글을 써내며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근데 그게 저에게는 제법 마음 한구석이 선선해진 시간이 되었나 봅니다. 한참 브런치에 집중해서 글을 쓰다가 어느새 글을 업로드하지 않은지가 두 달이 넘어가고 있던 제가 동생은 여엉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 이렇게 글을 쓸 용기를 동생이 만들어주고 갔네요. 한번 오늘부터는 부지런히 다시 써보려고 합니다. 그간 제가 써오던 이야기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분들이 이 글을 읽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와 이별을 하는 과정에서 나의 이야기를 하고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참 많은 도움이 되었기에 이렇게 조심스레 무거운 이야기이지만 한번 이 공간 안에서 털어내 보려고 합니다. 


 이름도 바꿔보았어요, 안녕이라고. 우리 막내에게 고하는 안녕이기도 하지만 오늘 하루를 견뎌낸 나와 당신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으로요. 아마 한동안은 무거운 이야기들도 제법 있을 것 같고 동시에 제가 출국을 위해 준비하는 이야기도, 저의 일상에 대한 글도 계속될 것 같아요. 왜냐면 저를, 우리 가족을 두고 시간과 일상은 흘러가니까요. 어느새 일요일 밤이 왔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내일이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해요. 첫날 이곳에 들어와 한참을 쓰다가 제가 마무리 지었던 문장은 '나는 이 순간을 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였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남짓한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참 별수도 없이 이 순간을, 이 시간을 견뎌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내일도 저는 이 시간을 견뎌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내일도, 당신의 내일도 안녕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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