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의 시간

당신의 안녕을 바랍니다 12

by 안녕

일기예보에서 보라색 해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봤습니다. 이 뜨거운 여름이 42도 정도가 되면 제가 주로 쓰는 일기예보 어플의 해는 붉어지다 못해 보라색으로 변하고는 합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땀이 나고 잠깐만 걸어도 땀이 흘러내리는 이 굉장한 더위의 여름을 보내고 있는데 문제는 제가 사는 집은 에어컨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절망스러운 순간은 따로 있습니다. 가끔 제가 사는 아파트는 정전이 되기도 하거든요. 이상하게 꼭 저녁 9시쯤 되어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면 정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꼼짝없이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아쉽게도 제가 사는 국가에서는 밤에 정전을 해결해주지는 않거든요. 처음에 정전을 겪었을 때는 이 상황을 어쩌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었는데 이제 이 정전을 몇 번 겪고 나니 뭐 내일이면 해결이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고만 있습니다.


선풍기도 없고, 핸드폰도 충전할 수 없고, 냉장고가 녹을까 문도 열지 못하는 초조한 그 시간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고요한 밤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우니 약간의 바람이라도 불었으면 하는 마음에 베란다 문을 열고, 핸드폰도 할 수 없으니 알람만 맞춰둔 채 가만히 침대에 앉아 있다 보면 결국 슬쩍 베란데 나가 가만히 앉아 있게 됩니다. 얼마나 오래된지도 모르는 자그마한 의자에 앉아서, 아주 조금씩 보이는 별들을 찾아 세며 하릴없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게 참 고요하니 좋은 마음입니다.


대체로 우리의 하루는 시끄러운 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끊임없이 음악을 듣는 사람이고,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으며, 사람이 정말 많은 도시에 살며 관광지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조용한 삶을 살 수는 없는 게 저의 평범한 일상입니다. 그래서인지 고요한 밤의 시간이 마냥 조용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그저 늘 바쁘게 움직이는 이 세상과 약간은 멀어진 채 참 별것 아닌 시간을 보내는 일이 참 낯설기도 하고, 갑자기 숨이 탁 트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바라는 것만큼의 선선한 바람은 아니지만 약간의 바람과 그저 넋을 놓고 쳐다보게 만드는 어두운 검은 하늘과 함께 가만가만 시간을 보내다 보면 갑자기 자리에서 툭 일어나서 '자야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나를 버겁게 만드는 이 문제들이 언젠가는 해결되겠지 하는 대책 없는 기대감을 품고말입니다. 그 고요한 밤의 시간은 그런 묘한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25.09.23 고요한 여름의 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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