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만년필을 쓰기 위해서는 잉크가 필요하다. 볼펜 심을 다 쓴 뒤 새 볼펜 심으로 갈아 끼워 볼펜을 계속 쓰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잉크가 충전되어 있는 카트리지를 만년필에 끼워서 쓰고 카트리지 안의 잉크를 다 소모하면 새 카트리지로 갈아 끼워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만년필을 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병 잉크를 쓰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만년필을 쓰는 것이 아니라고. 병에 담긴 잉크를 만년필에 넣어서 사용한다는 개념은 만년필로 글을 쓰는 일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수백 가지가 넘는 잉크 중 내가 고른 잉크를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이다. 내 손에 익은 필기구로 내가 원하는 색의 글자를 쓰다 보면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만년필용 잉크의 색은 다채롭다. 그 어떤 볼펜이나 젤펜보다 다양하다. 만년필용 잉크를 만드는 회사만도 수십 개이고 하나의 잉크 회사에서 백가지가 넘는 색상을 만들기도 한다. 같은 Blue라는 이름을 가진 잉크라고 해도 다른 회사에서 만드는 Blue 잉크는 때로는 미묘하게 때로는 놀라울 만큼 다르다. 잉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늘 아래 같은 색을 가진 잉크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잉크를 쓰면서 다채로운 색상에 눈뜨게 되었다. 어떠한 색의 미묘한 차이를 이처럼 집중해서 들여다본 일이 있었나 싶다. 아주 작은 차이만이 존재하는 비슷한 색들 사이에서 가장 나의 마음에 드는 색을 골라내는 일이 좋다. 누군가에게 편지나 짤막한 글을 써 줄 때 어떤 색이 그 내용과 가장 잘 어울릴지 고민하는 시간이 좋다. 오늘 나의 기분은 어떤 색 잉크로 쓰이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있을까 들여다보는 시간이 좋다.
다채로운 색상이 잉크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또 하나의 매력이 있다. 바로 색의 이름이다. Blue, green 같은 평범한 이름을 가진 잉크도 많지만 달의 먼지, 녹슨 닻, 작년의 꽃다발, 숨은 별, 월야, 깊은 바다, 저녁노을, 벚꽃 숲 같은 낭만적인 이름을 가진 색들이 수도 없이 많다. 달의 먼지나 숨은 별로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더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만년필에 대한 책은 이런저런 것들이 꽤 있지만 잉크에 대한 책은 드물다. 만년필이나 문구에 대한 책에 짤막하게 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잉크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인 책은 딱 한 권만 찾을 수 있었다. 아마도 잉크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말을 할 필요 없이 그 색을 직접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 아닐까. 나도 말을 줄이고 잉크로 쓴 시의 한 구절을 투척하며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