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비가 오래도록 내려 꽤나 습한 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골에서 제사를 마치고 올라오는 이 시간은 비가 내리는 만큼 길고 길게 느껴졌다.
제사는 늘 밤에 이루어졌다. 남에 집 제사는 참여해보질 못해 다른 집도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이해하기론 귀신은 밤에 다니니까 얼굴도 사진도 보지 못한 우리 할아버지도 그 시간에 오셔서 식사하시겠거니 했다. 다만 나에게 드는 물음표는 왜 맨날 맏며느리인 우리 엄마가 혼자서 두 아들 육아에, 회사생활에, 집안일까지 이 바쁜 와중에 소중한 월차를 내고 일찍 퇴근해서 제사에 필요한 장을 보고, 제사준비는 왜 그 시간에 하는 거며, 대체 그럼 죽은사람 밥 챙기는날이 그렇게나 중요하면 할아버지는 평시에는 하늘에서 뭘 어떻게 드시고 계신 걸까였다. 나처럼 급식이 나오는 것도 아닐 텐데..
그나저나 엄마도 할아버지 얼굴은 보셨으려나..
아무래도 회사일에, 제사 스트레스에, 허구한 날 오지도 않고 전화만 딸랑하는 고모들과 다른 며느리들 때문인지 엄마는 그날도 어김없이 화를 났다.
“도대체가 무슨 사람들이 자기네 아버지 제사 대신 준비해 주는 사람한테 수고했다 고맙다 소리도 안 하고.. 그놈의 와이프들도 코빼기도 안 비추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라고 소리를 백 하고 질렀다.
의도를 얼른 눈치채고 적당히 중재해서 얼른 마무리했으면 좋으련만 아버지는 또 자기 형제한테는 싫은 소리를 못하는 터라 역시나 오늘도 타이밍을 놓치고 엄마와 좋지 않은 감정을 주고받으며 집에 도착했다.
비가 많이 오던 겨울밤, 올라오는 모두가 동상이몽을 겪으며 제사는 시작과 끝을 맺었다.
부모님의 다툼은 꽤나 자주 있던 일이었다. 형과 나는 그런 부모님의 다툼을 보고 자랄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그렇듯 누군가 다투는걸, 특히나 소중한 가족이 다투는걸 지근거리에서 보는 건 꽤나 힘든 일이었다. 시끄러운걸 지극히도 싫어하던 나는 싸움이 제발 안 나길 바랐고, 싸움이 났으면 나가서 좀 싸우던지, 싸우더라도 극에 치미는 미운소리까지는 꼭 안 했으면 했다. 또 빨리 화해했음을 바랐다. 그리고 그중 가장 중요한 건 내 자의식에 침범하지 않게 귀를 닫아보려 부단히 도 노력했다.
그런 마음을 알아주었는지 다행히도 두 분의 다툼은 오래가진 않았다. 집이 크지 않았던 터라 싸워도 같은 방에서 지내는 바람에 마침 서로 마주 보지 않고도 대화를 할 수 있는 잠자리 허공 대화를 많이 했던 건지, 아니면 어차피 다음에 또 싸워야 하니 이쯤에서 풀고자 한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두 아들 눈치를 보고 화해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다시 겉으론 적당히 단란해진 우리 집이었다.
가끔 다투는 걸 제외하고 보면 본인들도 처음 해보시는 인생극장에서 아빠, 엄마 역할을 잘 수행하셨다. 아빠는 아빠 나름대로 평일 주말 없이 아주 성실히도 일을 찾아서 하는 분이었다. 특히 미국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창고에서 뚝딱뚝딱 뭔가를 잘 고쳐내는 그런 아빠였다. 그 시절 보일러는 왜 그리 자주 고장 났는지 나는 아빠라는 사람은 무슨 보일러 고치는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줄 알았다. 자전거와 자동차, 음주를 적당히 즐기는 법을 알려주고, 비록 외롭기는 하지만 한국형 남자 가장으로서 사는 법을 보여줬다. 그렇게 나는 굳이 나를 어디 자리에 불러 앉혀놓고 듣지 않아도 그의 행동으로부터 많은 걸 배웠다.
엄마는 우리 스스로가 꿈을 꾸게끔 도와준 분이었다. 우리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그게 무엇이든 우리 의견을 존중해 줬다. 대신 엄마의 허락을 받으려면 컴퓨터도 없던 시절에 정보입수를 열심히도 하기 위해 신문도 보고 책도 보고 스스로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도전해서 성취감과 패배감을 얻길 바랐고, 이런 과정을 겪어낸, 즉 네 아빠처럼 열심히 인생을 배운 사람은 보상을 받아도 마땅하다는 논리를 강조했다.
특히 그 보상 중에는, 엄마가 늘 퇴근할 때 배스킨라빈스를 사 와서 밥숟갈로 퍼먹게 하곤 곧 추워서 보라색이 된 입술을 재밌어하시면서 한 주동 안의 우리 성과를 축하했던 기억이 생글생글하다. 크게 풍요롭지 않았던 90년대 코타츠 같은 이불속에서 마치 노천온천에 온 것처럼 옹기종기 도란도란 기억도 안나는 이야기를 나눴었다.
결혼을 해서 그 무렵 우리 부모와 비슷한 나이가 돼 가는 요즘, 문득 부모님에 대한 짧지만 강한 기억이 떠오른다. 단지, 위에서처럼 부부가 다투는 기억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우리에겐 그 어떤 대단한 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나게 다툴 수밖에 없었던 것까지 이해해 보려 깊게 생각해 보건대, 사실 부모라는 것은 꽤나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부모라는 게 누구나 성장하면서 숙제처럼 이성을 만나 흔히들 행하는 것이지만, 학교에서의 수학문제처럼 누가 학습을 지원해주지도 않고, 나아가 2세를 키우는 것과 맞벌이를 하는 것 그리고 이제야 진짜 어른이 된 만큼 내면까지 어른 된 척 본인들의 부모에게도 어른스럽게 공경하는 법, 또.. 야밤에 얼굴도 한번 못 본 남에 집 제사를 지내는 것 등등 생각하기도 싫고 피하고만 싶은 일들 투성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우리 부모는 지금 내 나이에 그런 걸 툭툭 해내셨던 것이고, 매사 어른인 척하느라 힘들긴 힘들었을 테니 당연히 당신의 가장 친한 배우자에게 화내고 다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한편, 아빠의 아빠가 돌아가신 날에, 제사를 같이 기념하느라 고생한 자기 아내를 외면하고 친족에 편을 들어준 우리 아빠가 소박을 맞은 것처럼, 결혼을 하고 나면 소중하게 생각하는 순번이 바뀌어야 하는 생각도 든다. 어려서는 엄마아빠와 형제밖에 없는 세상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친구와의 세상만이 존재하고, 결혼을 하고 나면 자기 배우자와 자식만 있는 세상이 가장 중요하기 마련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차선책으로 선정되는 것들의 질투에도 가장 좋은 선택을 해내고, 이어가는 것이 인간으로서 해내야 할 도리이고 인간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발자취일 것이다.
오늘도 그날처럼 비가 온다.
그때의 그 일을 부모님도 기억하실는지 모르겠지만, 비가 오는 김에 기억난 것을 말미암아 부모님의 역량과 나의 역량을 비교해 보니 늘 고생하고 위로받지 못한 그들에 참으로 먹먹하기도 하고, 혹시나 우리에게도 그런 것을 기대하시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습해지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