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에 10년을 머물렀었다.
초등학교도, 중고등학교도 고작 최대 6년이었다, 대학과 그 이후에 어떤 것도 길게 지내본 적이 없던 흔히 말하는 변덕쟁이인데 참으로 이 재미없는 회사에서 길게도 버틴 내게 감사했다.
10년을 다닌 회사에선 많은 일이 었었다. 많은 이직 이후, 이제는 사람에게 정을 실어보자는 아주 단순한 목표만 가지고 시작한 이곳에서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만나고, 작은 월급을 모아 집을 사보는 재미도 얻지 않나, 게다가 원래 목표였던 마음을 의지할 직장동료도 몇 만나 목표를 이룬 셈이 됐다. 정만 붙여보려는 시도에 오히려 많은 가지들이 나에게 붙어 풍성해짐에 감사한다.
한편 10년은 이런 방면으로도 날 키웠다. 코딱지 만한 작은 나라의 얼추 비슷한 생활을 거쳐 도달한 이들이 만난, 고작 2~3백여 명 남짓한 이 회사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겪었다. 스펙트럼의 폭이 적던 이전까지의 직장에서는 보이지 않던, 다소 높으면서도 보수적인 시선이 내면에 나도 모르게 자리하며 다가오는 군상들이 내가 생각한 스펙트럼에 속하지 않으면 프리즘에 리플렉션 되듯 처참히 버렸다. 버리는 행동이야 당연히 소심한 내면 덕분에 연기활동으로 자각되고 표현되어 그들이 아프지 않게 도움을 주는쪽으로 표현해보았다. 고착화되지 않는 성격의 내게 어느 정도는 고착화될 수 있게 도와준 군상들에게 감사한다.
오전에 10년간의 짐을 싸며 있었던 곳을 돌이켜 봤는데, 그간의 4번의 퇴직과는 다르게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문자 그대로 퇴직이 아닌 휴직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회사-집-회사-집만 하던 내향적인 월급쟁이로써 정든 곳을 떠나 시원섭섭함 보다는 설레는 마음에 가까웠다. 회사원이 휴직을 1년이나 할 수 있다는 것도 변덕쟁이로썬 또 다른 재미였고 감사했다.
아는 분들도 있겠지만 몇 번이고 브런치에 끄적임을 할 때마다, 나와 배우자의 피가 이어질 2세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목표 등을 글로써 되뇌고 다짐하곤 했다. 그간 그런 내용을 주로 쓴 건 아직도 성장과정을 거치는 내가 다소 어른스럽게 변하길 바라서였다. "원래"라는 단어를 극도로 싫어해서 남자답거나 여자답거나, 철없거나 어른스럽거나란 단어 또한 싫어하지만 인간군상들을 거치며 자리한 최소한의 기준스펙을 통과할 수 있게 마음 저 밑을 다스리고자 했던 것 같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만 다시 말하면 나와 배우자의 2세가 곧 탄생한다. 과정을 다 설명하긴 쑥스럽고 복잡하고 궁금하지도 않을 테니 그냥 그랬다. 그렇게 됐다. 게다가 딸이다. 감사하오 부인
내가 끄적거린 브런치북 "계획의 일부"에서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듯, 지금은 그저 건강하게 태어나길 바랄 뿐이다. 따님 덕분에 회사에서 장기간의 휴가를 얻은 만큼, 잠시나마 또다시 많은 생각과 상상에 지배되며 딸과 내 인생에 기대되는 스펙트럼을 떠올렸지만 이내 다시 접었다. 10년여의 회사생활과 38년 인생을 겪으면서 오히려 단순해지고 작아지는 삶의 세계처럼 아이에게도 작고 단단한 기준만 부여하여 도움 주고 나머지는 녀석이 날갯짓하길 바라본다.
10년이란 제목을 하였는데, 10년을 써 내려감과 동시에 이제 나의 다음은 20년이다. 20년 뒤면 아이가 성인이 될텐데 깃털이 잘 다듬어지게 바라보는 재미가 있겠다. 빠짐없이 촘촘하게 솜털-깃털을 붙여주고 날개가 완성되면 빛을 기다려 받아들이는 스펙트럼에 머물지않고 빛에게 뛰어들 수 있게 날려주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