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드럽게 기니까 여드름인가
다음 주 추석을 앞둔 9월이다.
주말을 포함한 긴 명절에 다들 설레는 마음으로 이번주를 보내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참으로 더운 9월이다. 이렇게 더운 9월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덥다. 심지어 오늘은 베트남처럼 잠깐잠깐 비도 흠뻑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여기가 진정 사계절이 있던 한국인가.. 싶다.
출근길에도 이미 살짝 느꼈지만, 역시나 점심 먹으러 가는 길은 너무도 더웠다. 오늘 동료들과 가기로 한 식당은 회사에서부터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인데, 이미 도착도 하기 전에 횡단보도에서 땀이 주르륵 흘렀다.
오전에는 뽀송해야 그나마 오후까지도 버티는데, 정수리에 쬐이는 햇살과 습기에 뭔가가 터졌다.
괜히 옆에 있는 동료한테 화를 냈다.
"아니, 근처에도 식당이 있구만 왜 이리 멀어~~!"
기껏 식당도 못 정하는 메뉴결정 장애자에게 도움을 줬더니 돌아온 게 버럭이라니. 화날만했겠지만 잘 참더라. 그러고는 애써,
"시끄럽고 가서 먹어봐. 먹어보면 왜 왔나 알 거야"
괜히 나도 머쓱함을 느끼고는 찍소리 안 했다. 무슨 부부나 친구도 아니고, 여기까지만 해야지 더 나가면 싸울 거 같다. 괜히 어색하게 뻘쭘하게 남은 100미터를 걸으니 이내 건물 입구가 나타났다. "당기시오"를 확인하자마자 문틈새로 냉기가 스르르르 얼굴을 감쌌다.
다시 기분이 상쾌해졌다. 콩나물에 김치만 줘도 한 그릇 뚝딱 할 기분이다.
정신없이 동료들과 떠들며 식사를 마쳤다.
불과 어제 점심을 같이 먹었던 사람들인데, 그 잠깐사이 뭔 일들이 그리 많이 생겼는지 재잘재잘 떠들었다. 심지어는 대화에 나온 누군가에게 손가락질해야 할 일도 생긴다. 입으론 먹으면서 또 떠들어야지, 귀로는 들어야지, 머리론 생각해야지, 손으론 젓가락질, 손가락질해야지.. 바빠죽겠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역시 어떤 일이든 생긴다. 너무 재밌다. 이런 소소한 행복함 때문에 직장생활을 하지 싶다.
식당을 나오는 길에 자주 가는 카페에 간다. 커피는 언제부터 돌아가면서 사고 있었던가.. 여하튼 모르겠는데 왠지 내가 보기엔 그날그날 기분 좋은 사람이 커피를 사고있는것 같다. 직장인이 가진 게 월급뿐인데 담부턴 그날그날 뭐 운세 점수 높은 사람이 사기로 하자고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발가락 정도에서만 한다. 아니다 한 무릎정도던가. 그냥 사주면 감사합니다 먹으면 된다.
그러고는 남에 회사 로비에 들어간다. 어떤 회사냐면, 우리 회사보다는 쾌적하고, 그렇다고 여기서 일하고 싶진 않지만 놀고만 싶은 그런 회사를 찾는다. 들어가서 시원함, 쾌적함, 조용함만 이용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건 아까 마저 못한 별별 얘기를 해도 회사사람 눈치안 봐도 되니 좋다. 근데 이 회사 사람들은 이 좋은 곳을 두고 다 어디 갔지? 아.. 나처럼 그들도 우리 회사를 찾으러 갔으려나..
큰 이슈가 있는 동료의 얘기가 주를 이룬다. 서울에 내 집마련의 꿈을 이룬 사람인데, 인테리어 아저씨들과 기싸움을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말하는 내내 설레어하던 모습과 겪지 않았어도 될 세상의 쓴 모습을 발견했다는 그런 얘기 들으니 복에 겹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속고 속이는 이 세상 모습에 씁쓰름하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이런 데서도 쓰이는 걸 보면 뉴턴이 천재긴 한 거 같다. 여하튼 그 집에서 좋은 일만 가득하길..
확실히 나이가 들어가는지 대화의 방향이나 주제가 바뀌었다. 뭐 결국에는 시답잖은 농담으로 끝나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답답한 세상에 욕은 해도 그냥 그러고 만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일히일비 하지 않는다. 양희은 선생님의 "그러라 그래"가 떠오른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게 내 순수한 뇌에게 부담을 안주는 거라 편하다.
이러쿵저러쿵하다 보니 살짝 졸음이 몰려온다. 여기서 자면 안 되는데.. 우리 회사도 아닌데.. 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13시 10분 전이다. 무슨 배꼽시계도 아니고 정확하다. 얼른 일어나서 돌아가야 하는데 서로들 가기 싫은지 도통 가자고 말을 안 한다. 분명 저 인간도 시계를 본 거 같은데 내가 말해주길 바라나 보다. 성격 급한 사람이 먼저 말한다. "후.. 갑시다" 후 한숨이 꼭 필요하다. 안 그럼 맛이 안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