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J Oct 01. 2024

강아지 구조를 위해 담장을 넘던 가을이 왔다

가을 1편

유독 덥고 습했어서 불쾌지수가 많이 올라가던 이번 여름이 이제서야 지났다.


동네 곳곳에 있는 파고라나 의자에 앉아계시는 어르신들이 확연히 줄어들었고, 계시는 분들의 경우에도 옷차림이 사뭇 두툼하게 바뀌신 것을 보니, 아침저녁뿐만 아니라 오후시간에도 날이 추워진 것을 시각으로도 느낀다.


우리 부부에게는 이 맘 때쯤 하면 생각나는 강아지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그 일은 재작년 10월쯤, 와이프가 밤 늦은 퇴근길에 어두웠던 허공에서 강아지의 서글픈 울부짖음을 듣고서는 나에게 전화를 하면서 시작됐다. 출퇴근길의 와이프는 매번 노이즈캔슬링이 잘 되던 에어팟을 끼고 뒤에서 누가 오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던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날따라 왠지 버스에서 내리면서 금방 에어팟을 뺏던 건지, 아니면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뚫고 그 울음소리가 귓속에 들렸던 건지 모를 노릇이지만 여하튼 11시쯤 전화가 왔다.


"칼 같은 거 가지고 정류장으로 내려와 빨리!! 뚜뚜뚜..."


매번 그렇듯 자기 할 말만 충분히 하고는 툭 끊는 게 뭐 어색하진 않았지만, '칼을 가져오라니..? 보통 치한이 오면 몽둥이로 패야 되지 않나?' 하면서 무슨 일일까 궁금한 호기심 속에 우리 집에서 가장 날카로운 커터칼(택배용)을 잽싸게 챙겨 들고 미친 듯이 뛰어나갔다.

정류장 앞 횡단보도에서 와이프와 함께 서로를 마주 보고 있자, 마침내 왕복 6차선 도로가 고요해지며 그 서글픈 새끼 강아지 소리가 나에게도 들렸다.


'치한이 아니었군! 강아지 구출 미션이구나!'


소리를 다음 행동으로 인지하고는, 검은 하늘이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횡단보도를 빠르게 달려갔다. 서로 핸드폰 손전등에만 의지한 채 울부짖음 소리를 찾아 누군가의 사유지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2~3평 남짓한 곳에서 자기를 묶어둔 빨랫줄 같던 작은 새끼줄에 앞발이 묶여 난리를 치다 공간에 묶인 채 오도 가도 못하고 눈물만 그렁그렁한, 덩치만 조금 큰 어린 강아지가 살려달라고 소리를 빽빽 질러대고 있었다.


현장실황


나는 곧바로 고등학교 때 줄곧 하던 담넘기 실력을 기억하면서 울타리 장애물을 단번에 뛰어넘고는 녀석을 왼손으로 안심시킨 후, 오른손으론 꽁꽁 묶인 줄에 칼을 갖다 댔다. 기껏 테이프나 자르다 이미 이가 많이 나가버린 "우리 집 선정 날카로움 1위 카타칼"은 현장에선 마치 자기가 사포라도 된 냥 도무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서걱서걱, 낑낑낑낑 소리만이 시간과 맞물려 고요히 흘러가면서 거의 쥐 뜯어버린 줄이 마침내 팅! 하고 풀렸다. 강아지는 얼마나 아팠는지 우린 안중에도 없고 풀려난 자기 발만 연신 핥아댔다. 고양이만 키워보던 우리 부부는 개도 그루밍을 하던가? 하는 생각과 함께 안쓰러움에 머리를 계속 어루만져 주었다.


이윽고 아밀라아제 치료가 완료되었는지 처음 보는 남녀가 아주 날카로운 사포를 들고 있음에도 녀석은 우리를 구세주를 바라보는 눈을 하곤 핥아주려고 고개를 돌렸다. 어린 강아지 특유의 오두방정이 시작되려고 하는 순간, 어느새 시골 똥개 냄새가 코를 강하게 자극하더니 동시에 적응시를 거친 눈은 주위 수십 개의 똥을 발견했다. 물론 내 두발에 있는 것도 함께.. 으 내 신발..


녀석이 비교적 안전하다는 것을 판단하고부턴 우리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초록색 울타리로 둘러 쌓인 이 작은 곳에서 공중화장실을 안전가옥 삼아 살고 있던 녀석은 묶어있던 그 짧았던 줄이 공중화장실 문고리에 시작점으로 묶여있던 도중에, 그 문이 바람에 열려버리면서 바람에 연속적으로 휘날리던 문이 줄을 계속 흔들었던 것으로 보였고, 이에 의해 추풍낙엽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던 녀석은 줄을 풀려고 난리부르스를 추다 자기 발이 묶여 버린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대체 언제부터 비워졌던 건지 건조한 밥그릇과 물그릇, 똥의 개수로 보건데 이건 명백한 주인의 방치였다.


얼른 편의점에서 생수통과 개 사료, 간식 몇 점을 사 왔다. 봉지도 안 뜯은 그것을 벌써 후각으로 아는 건지, 집에 간 줄 알았던 구세주가 돌아와서 반가웠던 건지 모르겠지만 꼬리 헬리콥터가 작동하고 있을 때, 우리는 이미 각인되고 정이 생겼던 것 같다. 그리곤 허겁지겁 받아먹는 녀석이 종일 굶어서 그런 건지, 난리부르스 때문에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 건지, 그것도 아니면 개는 원래 그런 건지 도통 모를 의심 속에 서로 간의 안심을 확인하곤 그날은 여기서 이만 이별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