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SBS 예능PD 자기소개서 2번
<제작에서의 기쁨>
대학 입학 후, 첫 촬영 과제의 주제는 봄이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채 끝나기 전인 3월에 손쉽게 봄과 관련된 이미지를 찍을 수 있을 리 없었습니다. 곧장 남대문으로 가서 필름 카메라를 구입하고 남산에 올랐습니다. 머릿 속에서 봄과 엮을 수 있는 단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생명력, 솟아 오름, 꽃이 됨. 처음에 저는 남산 정상에서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던 새순을 찍었습니다. 찍고 나서도 내용은 맞을 수 있지만, 형식은 완벽히 틀리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남산을 걸어 내려 오는 길에, 산책하던 강아지가 길에 심어진 조화를 갖고 노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다시 찾기 위해 다시 산을 올랐고, 그 강아지를 다시 찾아서 봄 향기가 풍기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필름을 현상하고 촬영한 사진을 열어 보는 게 첫 번째 기쁨이었습니다. 과제 시연 때 남들은 대부분 꽃을 찍었는데 저 혼자만 동물 사진을 촬영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과 다른 아이디어를 통해 결과물에 대한 긍정적인 코멘트를 받았던 것이 두 번째 기쁨이었습니다.
<제작에서의 노여움>
지인의 부탁을 받아 인터뷰 촬영 아르바이트를 갔습니다. 그 곳에서 이어지는 홀대를 버티다 못해 내적으로 분노하고 결국 담당자와 얘기한 후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퇴근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사용자 측은 대규모 행사를 처음 진행하다보니 사전 인터뷰 스케줄을 전혀 잡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따로 정해진 식사 시간 없이 무한정 대기해야 했습니다. 두 번째, 사용자 측은 저와 일체 상의 없이 업무 내용을 변경해 당일 행사 스케치 영상 촬영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터뷰 장비의 철거와 설치를 반복하며 스케치 영상을 담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디렉션을 한 번도 주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사용자 측은 초기에 요구했던 기간인 6일이 끝나는 당일, 장비 철거를 완료한 후에 2일 추가를 요구했습니다. 당시 30분 안에 장비 재설치를 요구하는 주최 측에 저는 더 이상 할 수 없겠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사건까지는 지인과의 의리도 있고, 조금 부당한 대우를 당하더라도 돈 받고 일하는 프로의 입장에서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세 번째에서 결국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제작에서의 슬픔>
4학년 때, 자신있게 제작 팀장을 맡았습니다. 촬영 경험이 부족한 연출자에게 진행사항에 대해서는 조언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300명에 달하는 배우 캐스팅 메일 분류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익숙해진 로케이션도 생겼습니다. 그 후에는 스탭 복지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세웠던 원칙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밤샘은 하지 말자. 가장 저렴한 도시락은 최소화하자. 밤 늦게 끝난다면 교통비는 마련해주자와 같이 기본적인 원칙이었지만, 열악한 제작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작을 진행하면서 만들었던 스탭 복지를 하나둘 포기하고, 일상적인 고통으로 합리화하려는 스스로를 보면서 굉장히 슬퍼졌습니다.
<제작에서의 즐거움>
최종적으로는 저의 졸업 작품을 연출했습니다. 다양한 촬영 경험을 바탕으로 여유있는 촬영계획표를 준비했는데, 영하 21도의 날씨에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혹독했던 촬영장에서도 스탭들끼리는 사이가 돈독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촬영을 도와준 스탭이자 후배들과 당시를 회상해보면 춥지만, 즐거웠던 촬영장이었다고 합니다. 스탭들은 친한 친구들과 함께 촬영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면, 저는 제 나름대로 배우들과 연기로 소통하면서 즐거움을 찾았던 촬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