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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간 인연에게 말을 걸었다

우연을 인연으로 만드는 연습

by 쌈무
4월의 글 쓰는 밤 - 첫 번째 모임



옷깃 붙잡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을 곱씹게 된 건, 작년 여름에 아주 짧게 스쳤던 누군가의 옷깃을 다시 붙잡아본 순간 때문이었다.


밑미의 오프라인 강연장에서 우연히 만났던 분이 있었고, 4월에 그분이 여는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그분은 스스로를 작가라고 소개하지 않지만, 나의 존경을 담아 편의상 작가님이라 부르기로 한다.)


트레바리 같은 유명 플랫폼도, 잘 알려진 인플루언서가 주최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 모임의 소개글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신뢰를 느꼈다. 솔직히 말하면, 그보다 앞서 첫 만남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쳤을 때 본능적으로 느낀 호기심과 호감이 컸다.


'4월의 글 쓰는 밤'이라는 멋진 이름에 설렘과 약간의 긴장감을 안고 모임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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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서 오감 만족


여우비가 살짝 내린 종로의 저녁, 노포 안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직장인들을 스치며 모임 장소로 향했다. 언덕길을 오르는 발걸음은 의외로 가볍고 경쾌했다.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모임 장소에 도착하자, 작가님이 준비해두신 공간은 하나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적당한 조도, 감각적인 음악, 빈티지한 소품들까지. 공간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작은 디테일로 감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멋진 분위기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한 달간 모임이 이어지니 천천히 음미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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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대화는 스몰토크에서 시작했지만, 금세 깊은 곳으로 스며들었다. 직업과 취미, MBTI,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결국 모든 대화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그보다 흥미로운 건, 누군가가 던지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에 답하려 애쓰는 내 모습이었다. 30대가 되면서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초면의 누군가가 던진 질문 하나하나가 오히려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했다.


'재밌다'는 말, '말을 잘한다'는 말—평소 듣지 못했던 말들이 나를 찔렀다. 없다고 여겼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일부가,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흥미롭고 가치 있게 보일 수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은 묘한 쾌감을 줬다.


마지막 즈음, '소속감''외로움'이라는 키워드가 나왔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외로울 수 있고, 혼자 있어도 충만할 수 있다. 그날 작가님의 말 중 하나가 오래 머물렀다—'외로움은 빈도일지도 몰라요.'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떤 주기로 외로움을 느끼는지, 어떤 상황에서 그것이 짙어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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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을 인연으로 만드는 힘


모임이 끝난 뒤, 내가 스스로를 가장 칭찬하고 싶은 이유는 바로 '우연'을 '인연'으로 만들기 위해 작은 시도를 했다는 점이다. 반년이 지난 뒤에도 누군가를 기억하고, 다시 연락하고,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일. 그 모든 건 순간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만약 그날 작별 인사를 나누며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묻지 않았다면, 이렇게 따뜻한 밤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또한, 나 자신을 새로운 가능성에 노출시키는 연습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느꼈다. 퇴근 후에 혼자 운동하고, 유튜브를 보며 저녁을 때우는 익숙한 일상도 소중하지만, 때로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하고 어딘가로 이동해 누군가와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일. 그런 '간헐적 시도'들이 결국 내 삶을 더 충만하게 만든다.


작가님이 자신을 위한 요일과 시간에서 별명을 따온 것처럼, 나도 이제 나만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갔던 종로의 언덕길, 돌아오는 발걸음은 이상하리만치 가볍고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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