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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각자의 '퍼펙트 데이즈'

그 반복의 위로

by 쌈무
책과 올드팝을 벗 삼아 하루하루 평화롭게 살아가는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 그 소박하고도 충만한 일상 속에 과거의 추억이 잔잔히 떠오른다.


책과 올드팝을 벗 삼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 그의 일상은 조용히 반복되지만, 이상하리만큼 충만하다. 그 고요한 세계 속에 잊고 있던 감정 하나가 불쑥 떠오른다.


넷플릭스에 <퍼펙트 데이즈>가 올라왔을 때, 나는 이미 이 영화를 알고 있었다. 예고편도 여러 번 보았고, '루틴의 미학'이라는 평도 익히 들어왔다. 그래서일까, 처음엔 그저 '조용한 위로의 영화'쯤으로 가볍게 생각하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마음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잔상이 오래 남았다. 아련한 것, 짠한 것, 평온한 것, 그리고 조금은 쓸쓸한 것. 그 모든 감정을 한 번에 삼킨 듯한 기분이었다.



"왜 이런 일에 그렇게까지 하세요?"


히라야마는 도쿄 시부야의 공공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람이다. 그 일에 어떤 설명도, 변명도 붙이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아주 정갈하게 자신의 하루를 쌓아간다. 아침에 식물에 물을 주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고,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올드팝을 들으며 출근한다.


그 모든 행동이 마치 삶을 위한 작고 단단한 의식처럼 느껴진다. 무심한 듯 반복되는 그의 하루는 단조롭지만, 전혀 무의미하지 않다. 그의 루틴 속에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있다. "어떤 일이든, 어떻게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잔잔히 번진다.





"알고 보면 이 세상은 수많은 세상으로 이뤄져 있거든.

연결된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은 세상도 있지"



영화를 단순히 '일상의 소중함'으로 읽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것은 그보다 조금 더 내밀한 감정, '소외'와 '단절'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히라야마의 루틴은 어쩌면 내면의 고요한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지루하게 느껴질 하루가, 그에겐 자신을 지탱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그의 과거를 말하지 않는다. 왜 그는 혼자이고, 왜 그 일을 선택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관객은 조용한 그의 행동과 표정, 그리고 그가 듣는 음악의 가사를 통해 조심스럽게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완벽한 하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특별한 일이 생기는 날만이 완벽한 하루일까? 아니다. 히라야마처럼 조용히,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 반복 속에서도 자신만의 감정과 취향을 지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한 하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퍼펙트 데이즈>는 단순한 힐링 영화가 아니다. 관찰과 몰입, 의미 부여라는 키워드를 통해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온전히 살아가고 있는지 묻는 작품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퍼펙트 데이즈'를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외롭든, 평온하든, 혹은 조금 슬프더라도.

그리고 그 하루하루가, 언젠가는 우리 인생을 증명해 줄 가장 조용하고 단단한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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