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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쌈무 Dec 20. 2020

암살 교실, 이렇게나 완벽한 콘텐츠

지구를 구하려면 선생님을 죽여야만 한다


넷플릭스 같은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면 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단 하나의 콘텐츠'를 만나면서 지금까지 수없이 결제된 구독 서비스의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순간.


나에게는 이 <암살 교실>이 그런 작품이었다. 단순히 '재미있다'를 넘어서 '정말 잘 만들었다'라는 생각이 든 작품, 어떤 요소들이 그런 생각을 들게 만들었을까?


글을 써보면서 3가지 개념으로 정리해보았다.


첫 번째, 학생들이 선생님을 암살해야 한다는 미친 설정

두 번째, 그 미친 설정 안에서 이루어낸 완벽한 스토리의 균형

세 번째, 미친 설정과 완벽한 균형을 통해 전달하고 자하는 메시지


그래서 제목을 거창하게 "이렇게나 완벽한"이라고 지었다. '나에게는'이라는 부사는 생략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보편적 재미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 작품이다. 그럼 하나하나씩 살펴보자.


1. 설정


<암살 교실>은 지구를 위협하는 괴생물인 이른바 살생님(암살과 선생님을 결합한 단어)과, 그가 제시한 조건에 따라 그를 담임선생으로 삼지만 대놓고 그를 암살하기 위해 암살 기술을 배우는 학생들의 아이러니한 이야기를 그린다.


작품의 세계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암살 교실>의 오프닝 장면.


자신을 죽일 학생들을 가르치는 괴물 교사의 이야기라니. 정신 나간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신기하게도 그 설정 안에서 모든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고, 날카로운 사회비판과 감동적인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암살해야 한다는 설정 자체는 무겁게 보일 수 있지만, 스토리에서 코믹적인 요소를 높이고 학생들의 직접적인 전투 장면을 노출하지 않으면서 작품의 무게를 덜어낸다.


물론 '암살'이라는 큰 주제가 전편에 걸쳐 중심을 잡아주기에 전투와 액션은 필수적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학생들이 보여주는 액션은 폭력보다는 지략에 가깝다. 학생들의 역할이 암살자라 할지라도 중학교 3학년이라는 본질에서는 벗어나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작가의 배려와 전략인 것이다.


'암살'과 '교실'이라는 전혀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가 만났다. <암살 교실>은 설정이 매우 참신하지만 결국 선생님과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설정은 특이하지만 그 본질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경험한, 그리고 주위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결국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살생님과 학생들의 관계이고, 그 관계를 맺어나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갈등 성장이 이 콘텐츠의 매력이 된다.


무엇보다 정신 나간 이 작품의 세계관이 어떤 반전을 펼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감상 포인트이다.


이 작품의 반전을 여기서는 스포 하지 않을 테니, 만약 이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면 꼭 반전을 기대하길 바란다.



2. 균형


"균형은 이루지만, 중심은 잡았다" 나는 이 작품을 이렇게 평가하고 싶다. <암살 교실>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요소의 균형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다른 요소들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있다면 창의적인 설정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설정 안에서의 '스토리 전개 방식''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그런 면에서 암살 교실은 균형을 잘 맞추었는데, 내가 말하는 균형은 크게 두 가지 관점이다.


첫 번째, 캐릭터의 비중 분배


먼저, 살생님이 맡은 쿠누기가오카 중학교 E반의 학생 수는 30명이다. 놀라운 점은 30명 학생들의 비중이 적절하게 배분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이 느껴지는 선생님의 관점에서 학생들 각자의 스토리를 풀어내는데, 신기한 점은 학생들 각자의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모든 관계가 유기적으로 연계된다는 점이다. 모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작가의 의무감이 아닌, 스토리 전개에서 각자에게 필요한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물론 완결까지 30명의 학생들 각자의 스토리를 디테일하게 풀어내지는 않는다. 스토리의 중심점은 철저히 '살생님'과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나기사'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앞서 균형은 이루지만, 중심은 잡았다고 표현한 것이다.


살생님과 나기사,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 두 명이다


두 번째, 장르의 균형


두 번째, 장르의 균형이다. 배틀, 개그, 학원, 스릴러, 액션, 성장물 등 조화시키기 어려운 요소들의 균형을 맞춰냈다는 점이 대단하다. 진지해질 때쯤 코믹적 요소를 보여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반전을 전개한다. 심지어 로맨스도 있다. 물론 장르의 특성상 애니메이션이 긴 호흡을 가져갈 수 있지만  다양한 장르의 성격을 제한된 시간 안에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앞선 평가인 '설정'에서 아이들이 직접적인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대신 학생들은 상상의 공간에서 자신들의 전투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특히 학생들이 시험문제를 풀이하는 모습을 몬스터와의 대결로 묘사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개인적으로 이 묘사에서 작가의 창의력이 돋보인다.


모든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3. 메시지


자신의 꿈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부모,

성적이 나쁘다며 끊임없이 비판만을 주는 교사,

자신들보다 공부를 못한다며 학교 안에서 계급을 만들어내는 학생들,

선생님을 잃어 상처 받은 아이들에게 특종만을 뽑아내려는 언론,

다수를 위해서라면 소수는 희생해도 괜찮다는 정부


이 작품의 세계관 설정이 특이함에도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사회비판적 요소들이 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본 <암살 교실>은 학생들이 겪는 '차별''성장'의 이야기다.


그리고 사회가 만들어 낸 차별 안에서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고, 성장을 통해 그 차별을 극복할 수 있도록 살생님이 항상 옆에서 도와준다.  살생님은 학생들이 확실하게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아이들을 도와주는 봉사활동을 하도록 만들고, 암살 교육을 통해 익힌 기술들을 아이들을 위해서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을 모두 끝낸 살생님은 아이들의 곁을 떠난다.


작가가 교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결국 캐릭터의 '성장'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살생님이 가진 교육철학이다. 살생님은 도움을 주지만 결국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학생들을 대하면서 보이는 그의 공감능력과 성장전략, 희생정신은 가끔씩 보는 이를 놀라게 만든다.


살생님의 가르침을 통해 성장한 아이들.

내가 원하는 이 작품의 감상평


이 작품을 감상하고 "왜 살생님을 외계인으로 설정했을까?"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다. 혹시 현실에서는 그런 이상적인 지도자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외계인으로 설정한 것이 아닐까 매우 주관적인 해석을 해봤다.


물론 나는 세상 어딘가에 그런 선생님들이 존재할 것이라 믿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런 선생님을 만나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고통을 위로해주고, 성장의 계기가 되어주는 존재를 만난다. 비단 그것이 선생님이 아닐지라도.


그래서 나도 한때  <암살 교실>에 나오는 살생님 같은 교사를 꿈꾼 적이 있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는 순간 현실에 부딪히고, 나의 운명이 아닌 건지 직장을 다니며 평범하게 살고 있다.


비록 나는 그런 이상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지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이 더욱 큰 사람들이 좀 더 일찍 이 콘텐츠를 만나길 바란다.


"아, 나도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 저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 작품을 보고 그런 감상평을 가지게 된다면 이 작품의 메시지는 충분히 잘 전달되었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콘텐츠가 가진 힘이고, 콘텐츠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내가 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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