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차디찬 트럭 안의 공기 그리고 아버지.
어렸을 적 나는 골프선수가 되기 위해 외지에서 합숙훈련을 했었다. 빡빡한 일일 스케줄을 소화하며 막내 노릇까지 해야했지만 꿈이 있었기에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가족이 그리운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차디찬 물로 손빨래를 할 땐, 어쩌다 코치님께 심한 꾸중을 듣는 날엔 가족이 더욱 그리웠다.
가족이 하염없이 그리운 날엔 잠자리에 누워 남몰래 울며 눈물로 베개를 적시기도 했다.
열두 살이 되던 해의 겨울, 어느날.
그날은 오랜만에 우리집에 가는 날이었다.
설렘 가득한 가슴은 일찍부터 두근두근 요동쳤다.
아버지가 오시고 계신다는 생각에 얼음장같은 세숫물이 차갑지 않았다.
아버지가 오시려면 아직 한참이나 더 남았지만 나는 밖에서 기다렸다. 콩닥콩닥 뛰는 가슴 때문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으리라.
저 멀리 아침 안개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비포장 길의 끄트머리에서 아버지의 트럭이 어서 나타나길 바라며 추위를 달랬다. 흐르는 콧물의 짭쪼름한 맛도 잊은 채, 벌게진 볼이 칼바람에 트는 줄도 모른 채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저 길 너머에서 아버지의 요란스러운 트럭 소리가 들려왔다.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얼마나 반갑던지...
트럭이 내 앞에서 멈추자 나는 잽싸게 올라탔다. 코치님께의 인사는 뒷전이었다.
잠시 후 코치님과의 짧은 인사를 마친 아버지는 드디어 시동을 걸었다. 그리곤 우리 집으로 향했다.
차 안의 공기는 바깥과 다름없이 찼다. 아니,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찬바람 때문인지 더 차가웠다.
일부가 터져서 안이 훤히 보이는 싼 재질의 시트는 보는 것만으로도 손이 시렸다. 등을 기대도 쉽게 데워지지 않는 시트였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심하게 흔들거리는 차 안이, 기어가 바뀔 때에는 더욱 심하게 덜컹거리는 차 안이 나는 마냥 좋았다.
나는 시린 손을 허벅지로 깔아 뭉갠 채 집으로 가는 도로를 본다. 더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저 앞의 도로를 눈으로 당겨도 본다.
나는 우리 집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들뜬 마음 때문인지 허리를 꼿꼿이 세운 몸은 자꾸만 앞으로 쏠렸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백미러가 안 보인다며 다그치셨다.
짧았지만 그때 그 순간은 엄했던 아버지와의 단 둘만의 시공이었다.
그때 아버지와 나눈 한담 중 한 구절이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듯 선명하다.
(아버지)"힘들 텐데 할 수 있겠냐."
(나)"힘드니까 해보고 싶어요."
돌아보니, 그 순간은 지금껏 내 생애 가장 강렬한 향수로 기억되고 있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어린 나의 입에서 나온 저 한 마디 때문에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빚을 내가며 나를 지원해 주셨다고 한다.
어렸을 때의 특별한 경험은 살아가는 동안 내내 자신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나에겐 아버지와의 저 한 구절의 대화가 그렇다.
힘들 때마다 가슴 속에서 선명하게 울려 퍼지는 그때 아버지의 목소리는 나를 15년 전 그 차디찬 트럭 안의 공간으로 데려간다.
그리곤 나에게 따뜻한 용기를 준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다,
사람은 기억만으로도 힘을 낼 수 있다.
내가 평생 동안 적시적기에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소중한 기억을 선물해 주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 아릿한 향수 덕분에 저는 오늘도 힘을 냅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Photo by 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