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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 Dec 20. 2022

난생 처음 기획서라는 걸 써보다

독립출판은 주로 지자체나 재단, 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모사업을 통해 진행했다. 마흔다섯 명의 작가를 공저로 둔 첫 번째 독립출판물도 청년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다. 지금이야 두 자릿수가 넘는 책을 만들어온 만큼 나름대로 노하우도 쌓였지만,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는 바람만으로 시작했었다.


첫 프로젝트 당시 내 생애 처음으로 ‘기획서’라는 걸 써봤다. 기획서를 써야 하는 직종에 종사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막연하게 ‘이런 것들을 해보고 싶다’는 아이디어가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문서를 만들어야 했다. 기획서를 읽는 심사위원들로 하여금 ‘이 팀은 이런 걸 하고 싶어 하는구나.’ ‘이거 하면 청년들에게 도움이 많이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게끔 써야 했다.

나는 커뮤니티에서 새로운 활동을 함께 만들어볼 팀원을 모았고, 마치 대학교 조별 과제를 하듯 팀 회의를 진행했다. 크게 보자면 사업계획서를 쓰는 건 자기소개서와 그다지 다를 바 없었다. 단지 이 문서의 목적이 내가 어느 회사에 들어가기 위함인지,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함인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첫 기획서에 들어갔던 내용은 큰 카테고리로 다음과 같았다.


1) 단체 소개 및 지원 동기

먼저 우리가 어떤 단체인지 심사위원들은 모를테니, 간단하게 단체 소개를 했다. 2019년 5월에 창설했으며, (신청일 기준) 30여 명의 작가들이 꾸준히 글을 매개로 교류하는 단체라고. 거창하게 지역 내 신규 작가 발굴 및 육성, 자기계발 및 역량강화, 도시 재생 등 목표와 비전을 덧붙였다.

또 이 회사에 지원하게 된 동기처럼, 처음에는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려는 이유가 필요했다. 우리에게 그 이유는 그래도 명백했다. 우리처럼 글 쓰는 청년들을 더 많이 찾아내서 지역의 창작 문화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것. 공동체를 형성해 사회에 좋은 공헌을 하겠다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2) 사업내용 및 일정

또 기획서에 녹여내야 할 것으로는 콘텐츠에 대한 아이디어와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과정들. 요컨대 '뭘 할 것인지'와 '어떻게 할 것인지'였다. 우리는 온·오프라인으로 신청을 받아 매주 원고 작업을 위한 모임을 가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글을 처음 써보는 청년들을 위해 짧은 강의도 진행할 거라고 명시했다. 1주일에 1회, 총 4개월 간 진행. 그렇게 확보한 원고들을 엮어 독립출판물 제작까지가 전반적인 프로젝트의 프로세스였다.


3) 기대효과 및 예산편성기준

프로젝트가 진행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기대 효과는 크게 정량적 성과와 정성적 성과로 나뉜다. 정량적 성과는 수치 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지표이며, 정성적 성과는 조금 추상적이지만 이렇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도로 쓴다. 예를 들어, 첫 기획서에는 정량적 목표를 새로운 작가 40명을 발굴할 것이며, 매주 1회씩 4개월 간 총 15회의 교류의 장을 만들 것이라고 기록했다. 정성적 목표는 글쓰기 문화가 지역에서 활성화될 것이며, 독립출판에 대한 진입장벽이 해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게 예산 편성이었다. 얼마의 예산을 지원받아 어떻게 분배해서 쓸 것인지에 대한 내용인데, 구체적인 작성을 위해 필요한 항목들의 시세를 파악해야 했다. 모임을 한 번 가지는데 대략 몇 명 정도 모일 것이며, 다과를 준비한다고 하면 인당 얼마씩. 그렇게 인원 수와 다과 가격의 곱으로 모임 1회당 예산이 책정된다. 또한 출판물을 제작할 때 대략 몇 페이지로 몇 권을 인쇄할 것인지도 정해놓은 뒤에 그에 따른 견적을 받는다. 그렇게 기관에서 요청한 금액에 맞춰 예산을 짠다. 지금 와서 안 사실이지만,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 절대로 사전 편성한 예산대로 금액 사용이 되지 않는다. 첫 예산안은 프로젝트의 대략적인 방향성을 보여주는 지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하 내용들을 기획서에 첨부하면서, 무엇보다도 최대한 참신하면서도 너무 허무맹랑해 보이지 않게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우리는 회의 끝에 두 가지 콘텐츠를 기획서에 녹여냈다. 첫째로 우리가 가진 커뮤니티를 활용해 지역의 글 쓰는 청년들을 모아 작품집을 만들겠다는 것. 둘째로 우리가 직접 지역 자원들을 찾아서 그것들을 소개하는 매거진을 엮어내겠다는 것. 다행히 서류 전형은 통과했고, 면접이 뒤를 이었다. 어떤 질문이 들어올지 몇 가지를 예측해 보고 기획서에 대한 면접을 봤다. 대학 과제 발표 때도 그렇게 떨지 않았었는데 그날은 유독 긴장감이 더했다. 면접까지 마친 뒤 최종 결과는 아쉽게도 불합격. 작품집은 평이 좋았으나 매거진에서 점수를 많이 깎아 먹었다.

그렇게 이번에는 아쉽게 됐다며, 다음을 기약해 보자고 하고 며칠 뒤… 사업 포기 팀이 발생함으로 인한 추가 면접 일정이 잡혔다. 갑작스레 잡힌 일정이라 기획서를 미처 손보진 못하고, 추가 면접에서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 건지 설명해야 했다. 우선 과감하게 매거진은 포기하고 작품집에만 집중하겠다고 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순간 감도는 심사위원과 나 사이의 긴장감. 그 적막을 뚫고, 나는 순간 머릿속으로 번뜩이는 하나의 생각을 내뱉었다. “콘서트를 열겠습니다!” 콘서트라는 단어가 심사위원들의 구미를 당긴듯 시선이 내게 모였다. 신간이 나오면 흔히 작가와의 소통 시간도 가지고, 축하 공연도 하지 않는가. 울산은 그런 문화 행사 자체가 전무하니 그걸 우리가 최초로 시도해 보겠다는 의미였다. 관객은 몇 명 정도 모을 수 있겠냐는 질문에 어느 정도가 적절할지 미처 생각도 안 하고 나지막이 읊조렸다. “음… 100명?”


면접이 끝난 후, 순간적으로 그런 아이디어를 낸 나 자신을 칭찬했다. 그러면서도 이어 든 생각은 ‘이거 돼도 문제겠는데?’. 결과는 하루 만에 나왔다. 최종 합격. 나는 팀원들과 첫 프로젝트 합격을 자축했다. 우리의 아이디어와 콘텐츠가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제는 실전으로 보여줘야 할 때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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