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집단지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집단에서 소통이 이루어지려면, 가장 열등한 사람의 수준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집단지성은 '집단 멍청'일 뿐이었다. 수학자 파스칼 역시 “인간의 모든 고통은 혼자 집에서 조용히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라는 말로 혼자 있는 시간을 강조했다. 그는 타인으로부터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가 정신을 혼탁하게 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근대 철학자들은 함께 성장하기보다는 혼자 탐구하는 고요함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 했다.
학습은 결국 능동적인 행위이다. 누군가 가르쳐주든, 공동으로 학습하든, 배움의 결과는 학습자의 사고와 탐구에 달려 있다. 이는 마치 불 꺼진 방에서 스스로 촛불을 켜는 일과 같다. 다른 사람이 불을 키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촛불 하나를 켜려는 의지가 없다면 방 안은 영원히 어두울 뿐이다. 따라서 학습의 본질은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
학습의 본질이 개인적이라는 점은 혼자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뉴턴은 “나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더 멀리 바라봤을 뿐이다.”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성과가 선대들의 유산 덕분이라고 인정했다. 타인의 시행착오와 경험은 우리를 도약하게 만든다. 마치 오래된 나무 뿌리가 흙을 단단히 붙잡아 그 위에 새로운 나무가 자라게 하듯, 선조들의 축적된 지혜는 현재를 떠받치는 힘이다. 그뿐 아니라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 한 문제를 풀기에 나보다 타인의 시선이 더 적합할 때도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 배우고, 내 관점과 결합한다면 더 나은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 마치 다양한 색깔의 물감이 하나의 캔버스 위에서 새로운 풍경을 그려내는 것처럼.
혼자 학습하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 정적이고 깊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음속 생각은 시냇물처럼 흘러오고, 본질을 탐구하며 스스로 검증하는 시간은 마치 손끝으로 보석을 다듬는 작업과 같다. 반면 함께 학습하는 것은 동영상을 보는 일과 비슷하다. 생생하지만 빠르다. 방대한 정보들이 쏟아지고, 그 본질을 제대로 탐구하기도 전에 피드백이 몰아친다. 혼자일 때는 천천히 우물을 파며 깊이를 더하고, 함께일 때는 넓은 바다 위에서 함께 방향을 맞출 수 있다.
사람의 다양성은 각기 다른 쓸모를 만들어낸다. 쇼펜하우어는 집단이 모이면 무능해진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단편적인 시선이다. 쇼펜하우어는 지적이지만 인간관계에는 서툴렀다. 그렇다면 쇼펜하우어보다 인간관계가 능숙한 사람과 팀을 이룬다면 어떨까? 철학의 문제에서는 쇼펜하우어가, 인간관계의 문제에서는 동료가 활약할 것이다. 서로의 강점이 보완되며 문제 해결 능력은 더 발전한다. 혼자는 날카로운 창 끝 같지만, 함께할 때는 활용도 높은 검이 된다. 둘은 하나보다 강하다.
따라서 학습은 혼자와 함께,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완전해진다. 혼자일 때는 깊이를, 함께할 때는 넓이를 얻는다.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나 혼자의 깊이가 없는 함께는 표면적이다. 고독 속에서 스스로의 촛불을 밝히고, 연결 속에서 그 빛을 공유한다면 학습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진보해 온 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