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이라는 것은 언제나 묘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서사'다.
서사라는 건 결국 내가 삶을 살아오면서 겪은 사건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다. 같은 사건을 경험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이야기를 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하지만, 그 경험을 겪으며 어떠한 생각을 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것을 어떻게 연결짓고 재구성하는지가 우리 각자를 고유하게 만든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처럼 아르바이트를 하며 특정한 생각과 감정을 품은 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 나뿐이다. 그렇게 나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정체성이라는 건 단지 개인 내에서 끝나지 않는다. 서사는 개인의 것이지만, 그 서사를 이루는 연결고리들은 타인과 공동체 속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나의 기억을 잃어버린다고 해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연결고리를 통해 나는 정의될 수 있다. 반대로 내가 완벽히 고립된 상태에서 기억까지 잃는다면 나는 아마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결국, 정체성은 개인의 이야기일지라도 타인과의 관계, 공동체라는 더 큰 네트워크 속에서 형성되고 유지된다.
때문에 정체성을 네트워크로 바라보는 시각이 내게는 참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우리의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동하는 무언가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다른 모습, 다른 면을 드러낸다. 그 모든 모습이 복합적으로 얽히고 연결된 하나의 입체로서의 내가 존재한다.
이러한 정체성의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서사의 재구성이다. 사건들은 공동체와 타인에게 영향을 받지만, 그 사건의 이야기는 철저히 개인의 몫이다. 어떤 사건에 내가 어떤 의미를 붙이는지, 그것이 바로 나를 만든다. 자기기만마저도 정체성의 영역에서는 진실성을 가진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정체성을 이루는 서사에서는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자 진실이다.
결국 나의 정체성은 끝없이 진동하며, 무수히 많은 연결고리와 이야기가 얽힌 아름다운 네트워크다. 사건은 내가 통제할 수 없을지라도, 이야기는 내가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매 순간 나를 새롭게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