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이지 않으면 쓸 수 없다
연필을 왼손에 쥐고 칼날을 가져갔다. 나무 껍질이 벗겨지며 가느다란 가루가 바닥으로 흩날렸다. 나무는 연필을 보호하지만, 그 나무가 깎이지 않으면 연필은 쓰일 수 없다는 사실이 문득 마음을 파고들었다. 보호와 상실. 이 둘 사이에서 연필은 가만히 자신을 맡기고 있었다. 깎이는 과정에서 더 예리하고 단단해지는 연필심처럼, 우리도 그렇게 자신을 벗겨내야 하지 않을까? 손안에 작은 연필은, 내게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연필을 감싸고 있는 나무는 든든하고 따뜻하다. 그 껍질은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연필심을 지키며, 연필이 쉽게 부러지지 않도록 보호해준다. 하지만 보호가 지나치면 연필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완벽한 무용(無用)의 존재가 되어버린다. 나도 그랬다. 익숙한 환경과 안락한 보호막 속에서 머물고 싶은 유혹을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부모님의 사랑스러운 손길 속에서, 혹은 늘 같은 길의 하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지키려 한다. 하지만 그 안에만 머문다면, 우리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나무껍질 안에 갇힌 연필처럼, 본질은 영원히 드러나지 않는다.
부모님의 품이 전부였던 시절이 떠오른다. 울면 위로받고, 실수를 저질러도 다독여주던 그 보호는 따뜻했고, 안락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는 몰랐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사람인지 말이다.
보호는 소중하지만, 보호만으로는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쓸 수 없다.
연필이 깎이는 순간은 고통스러워 보인다. 날카로운 칼날이 나무를 파고들어 껍질을 벗겨내고, 연필심 가까이까지 다가선다. 그러나 그 깎이는 순간이 없다면 연필은 결코 본질을 발현할 수 없다. 나 또한 그런 순간을 지나온 적이 있다. 처음으로 실패했던 프로젝트. 그토록 열심히 준비했지만, 결과는 초라했고, 허무함만이 남았다.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 아꼈던 자존심도, 스스로 쌓아올렸다고 믿었던 자신감도 조각조각 깎여 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 깎이는 과정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순간이었다. 실패는 나를 넘어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니고 있는 진짜 강점과 약점을 드러내주기 위한 칼날이었다. 내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문제의 본질을 꿰뚫게 했고, 두려움 속에서도 다시 도전할 용기를 가르쳐 주었다.
깎인다는 것은 단순히 상처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필요한 껍질을 벗기고, 우리 안에 감춰진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연필이 깎여야 비로소 이야기를 써내려 가듯, 우리도 깎이는 고통을 통해서만 우리의 삶을 채울 수 있다.
깎인 연필은 더 이상 이전의 연필이 아니다. 그 끝은 더 날카롭고, 더 단단하며, 글씨를 쓸 준비가 되어 있다. 깎여 나간 나무 조각들은 바닥에 흩어져 있다. 그것들은 필요했던 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사라져야 할 것들이었다. 연필을 손에 쥐고 가만히 바라보자. 연필의 본질은 나무 껍질이 아니다. 그것은 깎여 나간 자리에 남은, 본질적인 심에 있었다.
우리 삶도 이와 같다. 보호받고 싶은 마음, 상실을 두려워하는 마음, 익숙함에 안주하고 싶은 유혹 모두를 떨쳐내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나보다. 두려워했던 깎이는 고통. 변화의 순간들. 그것들이야말로 나를 진정한 나로 만들어줄 것임을 이제야 알겠다. 연필이 종이에 남기는 흔적처럼, 세상에 내 흔적을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