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천성적 정신병을 지니고 있는가?

정신병의 보편성에 대해

by 상실





종종 지나치게 감정이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단순 감수성의 문제가 아닌, 남들과 단절감 마저 느낄만한 절망적인 우울을 지닌 채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 다른 이들이 평범하게 지내는 것을 보며 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평범함을 갈망하지만, 무참히도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인간과의 단절감과 자신에게 느껴지는 혐오감뿐이다. 그 때문에 스스로를 평범함과 거리를 두고 자신의 비정상의 영역으로 구분하게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손짓 하나에, 어쩌면 자신의 말 하나에 또는 자신, 타인의 일 하나에 끝없이 무너지는 것이 누구나 겪을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정이 예민한 사람들은 밤이 깊어져도 이유 없이 잠에 들지 못한다. 스스로도 모르는 본체 없는 감정이 스스로의 주위를 맴돌며 괴롭히기 때문에 강박증적인 증상까지 나오기도 할 정도이다.


흔히 정신병 하면 심각한 문제 정도로 여기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다르다. 자신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하고, 남들과 진정 인간으로서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우울이 따라온다.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 우울이라는 것은 모든 증상을 더 악화시키고 자신마저 단절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정신병의 경계가 많이 흐려지게 된다. 자신이 겪는 모든 고통은 평범함에서 거리가 먼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미 비정상적의 계념을 스스로가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어떤 고통을 만성적으로 겪더라도 정상이라는 궤도에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다. 흔히 말해 이런 사람들은 더 잃을 것이 없다는 표현이 반정도는 맞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을 정신병으로 생각하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정신병이 뇌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야만 있는 것이라면, 정신병이 비정상적인 것이라면, 감정이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태어났을 때부터 원치 않게 민감한 정신을 가지고 태어났고 자신과 타인 자체가 고통뿐인 고통을 안게 된 그들은 과연 비정상인가? 아니다. 애당초 정상의 기준은 보편적인 기준을 따라갈 뿐이고 비정상이라고 악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 이유는 절대 없다. 감정이 예민한 사람들 또한 선과 악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고통에 휘말려 그것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 스스로 악의 역할의 자리에 슨 것뿐이다.


인간에게 정상과 비정상의 계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적이고 일방적인 기준이니까.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이유 모를 고통 때문에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스스로를 세상에서 지우려 하지 마라.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당신이 감정이 예민해서 느끼는 고통은 태어나면서 가진 체질일 뿐이고, 그것의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이 예민한 것은 죄가 아니다. 감정이 예민한 것은 정상도, 비정상이 아니다. 그저 당신일 뿐이다. 고통에 무너지지 말고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