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와 지성의 죽음.
(저는 철학가가 아니고 그 정도 수준도 아닙니다. 반박 환영!)
*앱 변환문제로 특수문자가 보이는 점 양해부탑드립니다ㅠ
매일 글을 써야 하는 만큼, 저만의 작은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평소에 관심 있던 선악에 대해 다루어보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불완전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모르던 사실도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겠죠. 제가 읽었던 책 중 그런 말이 있었습니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그리고 **‘무엇을 아는지’** 를 공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좋은 말이죠. 저는 모르는 것을 공부하고 아는 것을 파고 들려합니다. 3ㅡ4일 정도 여러모로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네요.
1. 선에 대해서
•도덕.
1. 가장 위험한 사상.
•선.
1. 시야와 지성의 죽음. ←오늘
2. 위선.
3. 영웅.
2. 악에 대해서
1. 보편성.
2. 세뇌
3. 죄책감
4. 악행의 기준.
1. 선과 악에 대해서.
1. 살인.
2. 사형.
3. 동정과 죄인의 목줄.
‘신이 가장 기뻐하는 희생, 지성의 희생이다’
예전에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으며 본 문장입니다. 단순한 글일 수도 있지만, 저 문장은 저의 철학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단순한 문장으로 보이는 저 글 하나에 사유하는 법을 배웠고 깊이 파고드는 방법을 배웠죠. 저의 철학의 시작점이라 하면 아마 탄생의 순간과 저 문장을 본 순간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절 저 문장을 막 접했을 당시에 쓰던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신이 가장 기뻐하는 희생, 지성의 희생이다. 신은 지성의 희생을 바란다? 지성을 잃는다고 이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각한다. 생각하기에 신을 따르고 지성을 버렸다. 그들은 자신의 전부가 무엇인지 알까? 자신이 지성을 버리면서 따른다는 것을 자각할까? 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어찌 살아있는 건가? 자신의 존재의의를 깨달은 존재는 존재할까? 우리 모두 자신의 존재의의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살아가는 것이 맞는가?”
글을 쓴 지 얼마 안 되었을 시절이기도 했고 혼자만 보려고 쓴 글이기 때문에 가독성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 글에서 고민하고 고심하여 파생된 개념이 있습니다. 그것이 ‘**시야’**와 **‘지성의 죽음’**입니다. 이것들이 무엇인지, 또 그리고 어째서 선과 엮이는지 설명해 보죠.
‘시야’라는 개념을 간단하게 정의해 보죠. 시야(視野)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단순하게 우리가 보고 인지할 수 있는 범위이지요. 제가 말하는 ‘시야’ 도 같은 의미에서 쓰입니다. 우리가 보고 인지하고 나아갈 수 있는 범위입니다. 하지만 조금은 다릅니다. ‘시야’라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며 인지하고 바라보고 생각하는 모든 것의 사고 체계의 정도입니다. 무엇을 당연하게 여기고 무엇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지, 또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는 모두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시야의 범위입니다. 쉽게 말해 ‘시야’란 인지 수준인 것이죠. 어떻게 보면 지적 수준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냥 개인이 의심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가치, 윤리, 규범, 신념 등의 사고방식의 총합이라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저번 글에서 말한 당연하다 따르는 내재 도덕 또한 시야의 개념 안에 있습니다. ‘당연한 것’(내재 도덕)은 시야의 개념에서 하나의 감옥 역할을 합니다. 감옥 안에서 수많은 가혹행위를 당하지만 감옥에 갇힌 본인은 갇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저 감옥에서 자신의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갈 뿐입니다. 이곳에서 부조리는 ‘당연한 것’이니까요. 당연함이란 이름 아래 행해지는 가혹행위는 어떤 신체적 고통보다 잔인하고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아갔습니다.
우리 모두 당연함의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옥을 인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인식 수준이라는 것이 무의식에 가깝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감옥을 벗어날 수 있는 법이 있습니다. 대개 우연적으로 얻은 깨달음이나 혼자만의 사유로도 감옥을 인지하기도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식과 지혜를 쌓는 것입니다. 학업을 위한 공부가 아닌, 여러 지식인들이 남긴 지혜들을 책을 통해 읽으며 시야의 범의를 늘려가는 거죠. 시야의 범위를 늘리는 것이 자신에게 오는 당연함의 폭력을 당하고만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계도 있습니다. 감옥에서 벗어난다고 끝이 아닌, 감옥 뒤에는 또 다른 감옥이 있습니다. 약간말장난처럼 당연해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인식한 순간 인식한 것은 당연한 게 되어버리고 당연한 것은 또 인식하지 못하게 되어버리니 말이죠. 시야의 끝에 도달하려면 무위(無爲)에 가까워지거나 사고회로가 멈추지 않는 이상 인간에게는 힘든 일입니다. 시야의 끝을 세워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직 그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했고 ‘시야’라는 개념의 확장은 여기서 멈추었습니다. 시야의 끝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겨보죠. 그리고 저는 시야를 넓혀가는 과정이 자유를 손에 넣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느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는 것과 현 상황을 인지하는 것. 이것들이 우리를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도록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제 지성의 죽음에 대해 말해보죠. (다음 편에서 계속. 체력이 없습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