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에 대해서 5

시야와 지성의 죽음 2

by 상실

선 악에 대해서.


(저는 철학가가 아니고 그 정도 수준도 아닙니다. 반박 환영!)

*앱 변환문제로 특수문자가 보이는 점 양해부탑드립니다ㅠ


매일 글을 써야 하는 만큼, 저만의 작은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평소에 관심 있던 선악에 대해 다루어보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불완전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모르던 사실도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겠죠. 제가 읽었던 책 중 그런 말이 있었습니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그리고 **‘무엇을 아는지’** 를 공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좋은 말이죠. 저는 모르는 것을 공부하고 아는 것을 파고 들려합니다. 3ㅡ4일 정도 여러모로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네요.




앞으로의 목차


1. 선에 대해서


•도덕.
1. 가장 위험한 사상.


•선.
1. 시야와 지성의 죽음. ←오늘
2. 위선.
3. 영웅.

2. 악에 대해서
1. 보편성.
2. 세뇌
3. 죄책감
4. 악행의 기준.

1. 선과 악에 대해서.
1. 살인.
2. 사형.
3. 동정과 죄인의 목줄.



시야와 지성의 죽음.

(저번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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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성의 죽음에 대해 말해보죠. 지성의 죽음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자신이 믿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


감옥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자리에 머무르는 것.


1번은 말 안 해도 앞선 설명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2번입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 지점에서 멈춰있습니다. 앞선 설명들이 말이 무거워서 그렇지 우리는 살면서 꽤 많이 감옥을 인식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감옥에 머무르기를 택하죠. 아마 한국 정서 때문일 것입니다. 시야의 감옥을 깨달아도 어찌할 바가 없죠. 다가올 시험이 급박하고 진로도 불분명하거나 취업 문제가 있을 수도 있죠. 어쩌면 인간관계 문제 때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되었든 한국 정서와 삶의 여유라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부조리함을 느껴도, 옳지 않음을 느껴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폭력에 대응하지 못합니다. 너무나 바쁘기 때문이죠.


지성의 죽음이 어찌 좋지 않은 것이냐 하면 수많은 철학가가 말했듯 결국 도피는 좋은 삶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기준과 악습에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선택보다는 흐름에 맞기는 경우가 많아지고 중요한 순간까지도 외부의 것을 따르게 됩니다. 주관을 잃는다는 것은 삶의 이유를 잃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의의를 깨닫지 못합니다. 깨닫는다 해도 인간의 삶은 고정적이지 않고 항시 유동적이기 때문에 결국은 모두 변하게 되겠지요. 애초에 그전에 인간의 본질이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 인간이라는 생물이 없는 곳이 없는데 어찌 생물학적인 본질인 종족 번식의 필요성이 있겠습니까? 망치는 못을 박기 위해 존재하고 톱은 무언가를 자르기 위해 존재하죠.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어떤 강제성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해야 하는 것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이런 껍데기만이 남은 인간이 삶의 주체인 자신마저 잃는다면 그것은 하나의 자기모순입니다. 인간의 삶의 가치를 스스로 걷어차버리는 것이죠. 단체 이전에 생각하고 선택하는 개인이, 주체가 본인이 아님을 인정하는 순간 지난 모든 순간의 모순이 되어버립니다. 채워가야 할 껍데기조차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 가져야 할 태도는 의지와 의심과 인정입니다. 현 상황을 인지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고통을 짊어지고 나아가기 위한 영원한 의식과 당연한 것에 속아 자신과 남을 해치지 않을까 항상 생각하는 의심과 타인의 의견을 듣고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죠. 자신을 해치지 않는 삶. 자신을 위한 삶. 자신이 만들어간 자신의 삶.


마지막으로 짧게 선과 앞서 두 개념들이 무슨 연관이 있냐 하면 다음에 말할 위선과 관련이 있습니다. ‘시야’의 당연함을 따르는 것과 ‘지성의 죽음’의 잘못됨을 깨닫고도 계속 행하는 것. 이 두 가지의 모습이 결국 선의 모순을 불러오고 그것의 바로 위선입니다. 제가 앞선 글에서 말했든 ‘당연함’ 은 현대 사회에서 도덕의 역할로 따라야 할 선의 모습이 되어있기 때문에 오히려 선의 가면으로 악을 정당화시키고 그 명분을 만들기도 합니다. 시야와 지성의 죽음은 악의 조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자세한 건 다음 글에서 다루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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