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은 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징후다. 아직 주름을 고민할 나이는 아니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은근 신경쓰이는 게 있다. 바로 목주름이다. 얼굴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팽팽하게 만들 수 있다지만 목주름은 쉽게 감춰지지 않는 노화의 흔적이다.
서서히 드러나는 몸의 변화들이 낯설다. 목주름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얼굴과 손 위에 검버섯이 피고, 머리는 하얗게 세어갈 것이며 주름도 점점 깊어질 것이다. 이런 변화들이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도 들테지만 한편으론 내 몸의 변화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내면의 깊이도 함께 더해지길 바란다. 피할 수 없는 노화를 억지로 막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쏟기보다는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내 자신을 더 사랑하고 어루만져주길. 깊어지는 주름만큼 내면도 깊어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
작년까지만 해도 잘 입고 다니던 바지가, 이젠 배를 죈다. 결국 고무줄 바지를 찾게 되고, 그런 바지들이 내 옷장에서 점점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해간다. 상체는 마른 편이라고 자부했던 나도 어쩔 수 없나 보다. 날씬했던 엄마가 뱃살이 늘어날 때마다 '이건 나잇살이야.'라고 했던 말을 비웃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나잇살이지, 뭐.' 한다. 실은 그게 정말 나잇살인지, 아니면 그냥 느슨해진 생활 탓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탄력 없이 축 늘어진 뱃살과는 이제 그만 ‘안녕’하고 싶다.
뱃살 대신 두둑한 배짱으로 무장하는 삶이 좋겠다. 배짱은 대범한 마음과 태도를 뜻한다. 나이가 들수록 결정 앞에서 대범함보다는 소심함이 앞서고 자꾸만 주저하게 된다. 그럼에도 때론 무모해보이는 일도 실행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뱃살 말고 배짱 두둑히 챙겨서 — 젊은 생각과 마음으로, 남은 인생도 재미있게 살고싶다.
현재 미취학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 나로선 때때로 그 책임이 버겁게 다가온다. 모든 것이 선택의 연속이며, 선택의 무게 또한 가볍지 않다. 아이들의 미래가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린 것이 아닌데도, 비합리적인 불안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게다가 내 자아는 아직도 팔팔하게 살아있어 하고싶은 일을 참아야 하는 현실이 가끔은 서글프기도 하다.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추길 바랄 때도 있지만, 한편으론 얼른 커서 건강하게 독립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래야 비로소 양육자의 무거운 책임에서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은 언젠가,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빨리 내 품을 떠날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의 마음 어느 한구석 쯤엔 엄마의 자리가 남아있기를 바란다. 세상살이에 지쳐 일어설 힘조차 없이 버거울 때, 가끔은 엄마를 떠올려줬으면 한다. 그리고 살아낼 힘을 얻길 바란다.
따스하게 안아주던 엄마의 품을 기억하고 그 온기로 조금은 따뜻해지기를. 그토록 사랑받았던 기억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그래서 난 오늘도 언젠가 떠나갈 아이들을 품에 안는다. 몸이 부서져라, 있는 힘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