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에게.

by 에이프릴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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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주제: 과거, 현재, 미래 - 세 시점 혹은 원하는 시점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문득 『코스모스』에서 칼 세이건이 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과거·현재·미래라는 시제가 사실 인간의 인식 틀 안에서만 유효한 시간 구분일 뿐이라고 했다. 시간은 인간이 구조화한 개념일 뿐, 우주는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하게 시간과 공간을 다룬다는 것이다. 정말로 인간은 알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시공간이 존재할까?라는 뻘 생각을 시작으로 어떤 시점에 있는 나에게 편지를 쓸지 나름 진지하게 고민했다.



과거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면 위로라고 건네는 말들이 결국 자기 연민으로 이어질까 혹은 후회스러웠던 일들이 떠오를까 싶어 일단 접기로 한다. 현재의 나에게는 이미 매일 읽고 쓰며 주저리주저리 대화하고 있으므로 굳이 편지까지 써가며 할 말은 없다. 그래서 미래의 나에게 써보기로 했다. 내일의 나? 후년의 나? 언제가 좋을까 고민하다 무려 예순의 나에게 한 번 말을 걸어보려 한다.






안녕하신가요?

비록 제 자신에게 건네는 편지지만 나이 앞에서 공손해지네요. 말도 저절로 높여지고요. 제가 그렇게 예의 바른 사람은 아닌 걸 아시니 비웃으시려나요.


예순의 나이에 이 편지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아직 살아계신다는 얘기니 굉장히 운이 좋으세요! 그렇게 골골대면서 어떻게 잘 살아내셨습니까. (빈정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토록 싫어하던 운동도 하시고 건강관리도 하셨을까요? 큰 병에 걸리진 않으셨나요? 어찌 됐든 환갑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감격스럽네요.



그나저나 설마 아직까지 학교에 계신 건 아니죠...?

50대엔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 말해왔는데, 과연 다른 일을 찾으셨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지금의 저는 그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조금씩 할 뿐이라 언제부터 다른 길을 본격적으로 모색할지는 모르겠네요.

만약 학교에 여태 계신다면 아이들을 사랑하고 가르치는 일에 큰 보람을 느끼고 계신거겠지요? 그런 게 아니라면 이제 후배 교사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그만 내려오시지요..



시퍼렇게 어린 제가 당신께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나마 제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라 이런저런 말을 할 수 있겠지만요. 그만큼 살아내신 것만도 정말 고생하셨어요. 어떤 시간들을 지나왔을지 감히 짐작도 안되네요. 우리 아이들은 잘 컸나요? 사춘기는 무리 없이 지나갔을까요? 아이들도 이제 20대가 되었겠어요. 여전히 품 안의 자식일지요. 이제는 아이들의 얼굴에 솜털을 구경할 일은 없겠네요. 마음껏 안고, 뽀뽀도 못하시니 그 부분은 전혀 부럽지가 않네요. 지금 마음껏 누려야겠어요. 놀리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의 보드라운 볼 감촉은 기억하시나요? 그리우시죠? 조금만 기다리세요. 손주를 볼 수도 있잖아요.



생계에 허덕이는 미래는 상상하고 싶지 않고 그저 좀 여유로운 시간이 찾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품습니다. 아이들이 없어 조금은 허전한 공간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며 우아떠는 상상을 해봅니다. 여전히 읽고 쓰는 건 좋아하시나요? 그곳에서의 읽기와 쓰기는 더 깊어졌기를요. 그리고 그만큼 더 나은 어른이 되셨는지도 궁금하네요.



이제는 아이들도 다 키웠고, 그곳에선 자유로우신가요? 아니면 외로우신가요?

(죄송해요. 아무것도 짐작되는 게 없으니 질문만 할 수밖에요.)

만약 당신이 몸도, 마음도 자유로우시다면 잘 살아왔다는 것일테고, 보편적 외로움이 아닌 정말 곁에 아무도 없는 외로움을 겪고 계신다면 뭔가 잘못 살았을 수도 있겠어요. 지금의 제가 함부로 판단할 건 아니지만요. 물론 저는 지금도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살고 싶진' 않거든요. 기여하는 삶을 살았다면, 사랑하며 살았다면 당신은 외롭기보단 주위에 사람들로 따뜻할거에요. 부디 당신이 혼자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키워가는 것이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 생각나요. 당신은 지금의 저보다 죽음에 한 발 더 가까이 계시겠지요. 나이가 들면 생의 미련과 집착이 생기기도 하고, 죽는 게 더 두려워진다고들 하는데, 당신도 그런가요? 죽음이 두려우신가요?

도스토예프스키의 <양파 한 뿌리>이야기 기억하실런지요. 손에 쥔 양파 한 뿌리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부디 구원의 기회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 없길 바래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데에 남은 시간을 쓰시기를 지금의 저에게, 훗날의 나인 당신에게도 당부드립니다.



제가 좀 주제넘었나요? 그래요, 다시 읽어봐도 참 건방지네요. 죄송해요.

아무튼 잘 살아보자는 얘깁니다. 저도, 당신도요. 그럼 앞으로도 건승하길 바라며 편지를 마칩니다. 전 아직 많이 바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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