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식 전 날 학교 도서관을 찾았다. 고작 9일이라는 짧디짧은 방학이지만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다양한 읽을거리로 즐길 상상을 하며 두 손 가득 책을 들고나왔다. 그 중 두 권만 읽어도 성공이다. 닥치는 대로 고른 책들 중 가장 얇고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책을 먼저 집어 들었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이 책은 짧은 소설로 할머니, 엄마 그리고 딸 - 3세대에 걸친 여성들의 이야기다.
화자인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나'.
'친애하다'는 말은 ‘애(사랑)’에 ‘친’이 붙어 친밀히 사랑하다는 뜻이다. 엄마와 할머니에 대한 그 깊은 애정이 ‘친애’라는 단어에 절묘하게 담겨 있는 듯하다. 따뜻하기만 했던 나의 할머니와 남달랐던 엄마에 대한 복잡미묘한 시선이 잘 그려지며, 깊이 감정이입하며 읽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가만히 나의 할머니와 엄마를 떠올렸다.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셨기에 흐릿한 기억 저 편에 있는, 잠시 잊고 지냈던 할머니.
그리고 문득문득, 불쑥불쑥 언제든 찾아오는 엄마.
둘 다 곁에 없기에 더 사무치는 감정, 그리움 같은 게 밀려왔다. 그리고 그 감정들과 기억들을 하나하나 꺼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곧바로 노트북을 켰다. 오늘은 작정하고 내 할머니를 추억해 보려 한다. (엄마를 추억하며 쓰기에는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글이 될 듯하다.)
할머니의 목에는 구멍이 있었고, 얼굴의 한 쪽은 일그러져 있었다. 후두암 수술의 흔적이었다. 그래서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할머니는 입술을 움직일 때 나는 미세한 소리와 입모양으로 자식들과 대화를 나누셨다. 그런 할머니의 말을 알아듣는 어른들이 참 신기했다. 어린 나는 할머니가 기계를 통해 목소리를 낼 때도 무슨 말인지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 기계음은 너무 낯설고 이상했다. 그래도 할머니의 말을 알아들으려 무척 애썼고, 가끔 할머니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면 마치 나도 어른이 된 것만 같아 뿌듯했다. 생각해 보면 할머니와 어린 나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할머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고, 느꼈다. 그래서 나도 할머니를 참 좋아했다.
내 동생은 당시 할머니가 무섭다고 울며 엄마 뒤로 숨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겨우 7~8살쯤이었을 텐데, 그 어린 나이에 동생을 보며 철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억지로 할머니에게 안겨, '나는 할머니에게 거부감이 없어요.'를 맘껏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사실은 나도 구멍이 뚫려버린 할머니의 목이 무서웠고, 특유의 할머니 냄새도 이상하게 느꼈다. 아마 그런 거부감이 나에게도 있었기에, 동생의 모습이 더 민망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명절이면 전북 김제, 시골 할머니 댁에 내려가곤 했다. 그마저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까지의 일이라 몇 가지 장면 말고는 떠오르는 기억이 별로 없다. 사촌들과 함께 옹기종기 자고 아침에 함께 만화 영화를 봤던 기억, 뒷산에서 뛰놀았던 기억, 고추밭을 구경하던 장면, 시골집 바로 옆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던 일들. 그리고 항상 할머니가 키우시던 닭으로 끓여주셨던 삼계탕. 어느 날은 닭을 발로 무참히 밟아 죽이는 장면을 목격했고, 그날은 그토록 좋아하던 삼계탕을 한 입도 먹지 못했다. 이런 단편적인 장면들은 여직 생각이 난다.
그중 지금까지도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일화가 하나 있다.
할아버지 산소에 갔었을 땐가, 엄마 아빠가 합심해서 사랑의 매를 구하겠다며 산을 뒤졌더랬다. 그땐 매로 다스리던 시절이었다. 속으로 절대 그 적당한 나뭇가지가 엄마 아빠 눈에 발견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이내 아빠는 매에 아주 적합한 두께와 길이의 것을 찾아냈다. 할머니는 그게 뭐냐고 물으셨고, 그것의 정체를 알고는 거칠게 뺏어 잘근잘근 부숴 저 멀리 던져버리셨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할머니는 엄마, 아빠에게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역정을 내며 엄청 뭐라고 하셨고, 엄마와 아빠는 그저 민망한 듯 웃으셨다. 그 순간 할머닌 나의 구세주, 슈퍼우먼이었다. 따뜻하면서도 짜릿했던 그 기억은 아직도 할머니를 생각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할머니의 마지막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8남매 중 막내였던 엄마였기에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이미 할머니의 팔순 잔치를 치렀다. 이후 기억하는 장례식 장면이 외할아버지였는지, 외할머니였는지도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미국에 살고 계신 외삼촌들이 울며 뛰어들어왔던 장면, 버스에서 이모와 삼촌들이 울어 나도 따라 울었던 기억이 간간이 날 뿐이다. 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엄마의 얼굴을 자꾸 살폈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너무 슬퍼하진 않을까, 괜찮나 걱정했던. 그런데 생각보다 엄마가 멀쩡하게 일상으로 돌아와 어른들은 원래 슬픔을 빨리 이겨내는 건가? 했었다. 그때 엄마는 정말 괜찮았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는 몰래 울었을 것이다.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어떤 장면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나를 붙잡는다. 책을 통해 잠시 잊고 있었던 할머니를 다시 떠올릴 수 있어 감사하다. 잊고 지냈던 사랑이 다시금 떠올라 따뜻하다. 어제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옆에 아들이 다가와 앉기에 글의 일부를 읽어줬다.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다 당황스럽게도 갑자기 펑펑 눈물이 났는데, 아이가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렇게 언제나 내 곁엔 소중한 사람들과 사랑이 나를 감싸고, 나를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