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역시 어둡고 지독한 외로움의 밤을 견디고 나니 어김없이, 그토록 기다리던 해가 고개를 든다. 드디어 아침이다. 요즘은 해가 길어 일찍 밝아져도 아이들을 한참이나 기다려야 한다. 아침임에도 뜨겁게 데워진 나에게 한 아이가 드르륵 들어온다. 매일 7시 반이면 어김없이 문을 여는 이 아이 덕분에 난 일찍 시원해질 수 있다. AI 인가 뭔가 하는 게 들어오고 난 뒤 사람을 인식하여 적정한 온도와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한다. 내 나이 60여 년, 수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최근 10년 사이 더욱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특히 사람도 뭣도 아닌 그 AI라는 녀석의 등장으로 나와 교사들, 그리고 아이들은 완전히 달라졌다.
교사와 학생들이 머무는 공간, 나는 교실이다.
교사의 옷자락엔 늘 백묵 가루가 묻어있고, 그들의 손가락 사이사이엔 2~3가지의 서로 다른 색의 분필들이 끼워져있었다. 초록 칠판 가득 성실히 써 내려가던 시절, 칠판에 경쾌하게 울리는 분필들의 타닥탁탁 탭댄스 소리와 스슥사삭 연필 소리가 나의 공기를 고요히 채우던 때가 있었지.
지금의 교사는 전자 칠판에 우아하게 손가락으로 톡, 톡 혹은 슥- 터치한다. 그럼 형광펜도 됐다가, 빨간펜도 됐다가 수십 가지 색의 펜으로 변신한다. 칠판지우개를 팡팡 털 필요도, 쉬는 시간 미리 지우개를 털지 않은 주번이 앞으로 불려나가 혼날 일도 없다. 손가락 하나로 그 어떤 자국 없이 사라지니까.
아침 조회시간, 교사는 더이상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지 않는다. 지문인식으로 출석체크가 되며, 학생이 지각할 경우 부모에게 자동 연락이 간다. 교사의 아침이 한결 여유로워 보인다.
학생들은 서랍에서 책과 공책, 필통을 주섬주섬 꺼내는 대신 테이블마다 설치된 각자의 태블릿의 전원을 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전자칠판엔 교사가 공유한 화면이 뜨고 그곳에 각자의 과제를 올리며 소통한다. 수업은 매끄럽고, 교사와 학생들은 서로 마주하고 있지만 눈은 화면에 고정되어 서로를 오랜 시간 바라보지 않는다. 그 네모난 화면의 빛 보다 더 깊고, 선명한 빛이 자기들 눈에 있는 줄도 모르고.
예전처럼 교사는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법이 거의 없다. AI가 교사의 도움을 받아 학생들의 학습, 태도, 심리 등을 관찰하고 평가하며 객관적인 데이터가 근거가 되어 남는다. 아이들과 학부모는 그 데이터 앞에 어떤 반발도 할 수 없으며 교사는 그 확실한 데이터로 자기를 보호한다.
언제부턴가 교사들은 교실에서 수업'만' 한다. 분필을 던져가며 아이들의 잠을 깨우지도, 아이들과 신경전을 벌이는 일도 잘 없다. 훈육보다는 타이름과 조언 정도로 그치며, 그 이상의 에너지를 쓰는 것을 꺼려 하는 듯하다. 그렇게 교사와 학생은 그저 피상적인 관계로 서로의 삶에 스며들지 않는다. ‘스승’이라는 말이 지니던 무게와 울림이 사라진 자리가 공허하게 남는다.
나는 지금 최첨단의 기술과 시설로 무장된 교실이 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쾌적하고 깨끗한 공간이지만 텅 비어버린 듯하다. 아이들은 이제 작은 화면에만 몰두할 뿐 아침이면 왁자지껄 떠들지 않는다.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들려오던 공 차는 소리, 시끌벅적한 소리도 언젠가부터는 잘 들리지 않았다. 한 교실에 30-40명으로 꽉 차던 아이들이 줄어서일까. 바닥도, 책상도, 의자도 더 이상 삐그덕 소리내지 않아서일까. 뭔가를 도려낸 기분은 왜일까.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왁스 칠 해가며 바닥 닦던 소란스러운 청소가,
온 교실이 시끌벅적 감동의 파티가 이루어졌던 스승의 날이,
모두가 부대끼며 하하 호호 댔던 그 웃음소리가,
무엇보다 아이들의 반짝반짝한 눈과
교사들의 애정 어린 시선이
사무치게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