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 그 시절, 교회 오빠

by 에이프릴맘



그때 그 시절, 나의 교회 오빠를 추억해본다.



교회 오빠란 자고로 기타를 치고 노래를 잘하며, 지적이고, 늘 선한 미소를 장착하고, 매너가 좋은 그리고 대놓고 잘생겼다기보단 '은근' 잘생긴 사람이어야 한다. 약간 이석훈 같은 스타일이랄까. 거기에 허당미가 있어 보호 본능까지 일으킨다면 갓.벽.한 교회 오빠로서의 자격을 갖춘 거다.




하지만 나의 교회 오빠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는 운동선수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키가 멀대같이 컸으며 착하게 생긴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어울리지 않게 워십팀으로 가끔 무대에서 그의 춤사위를 보곤 했다. 당시 그는 27살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까지 연애를 안 했다기에 정말 특이하다 생각했었다. (물론 나도 딱히 제대로 된 연애 경험은 없었다.)




그즈음 나는 1년간 단기 선교를 다녀와 굉장히 홀리한 상태였다. 한국에 와서 청년부의 해외 단기선교팀장이 되었고, 그는 나의 팀원이 되어 제대로 된 첫 연을 맺게 되었다. 장난기 가득했던, 뭣 모르고 까불던 시절 그 오빠는 나의 타깃이 되었다. 그렇게 놀리고 장난치며 친해졌다. 웃고 떠들긴 했지만 셀모임에서 나누는 성경 말씀과 진지한 나눔에서 그의 깊음을 느꼈고, 나와 결이 맞음에 반갑고 좋았다.




점점 사적인 연락이 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대화하면 즐거웠다. 대화를 할수록 좋아졌기에, 괜히 남녀관계로 발전해서 좋은 사람 잃지 말고 이렇게 쭉 좋은 친구로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그와 더욱 가까워졌던 건 수련회였다. 같은 팀이라는 이유로 함께 붙어 다녔다. 어떤 포인트였는지는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나를 챙겨주던 세심함에 그가 더 좋아졌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친해지고 함께 저녁을 먹던 어느 날, 감이 왔다. 그가 고백할 거라는걸.

계속 망설이던 그의 모습, 뭔가 간질간질하던 그 분위기, 그리고 그 어색함이 싫어서 발걸음을 재촉했던 6월의 밤. 그와 함께 걸었던 거리가 여전히 생생하다.

결국 우린 각자 헤어져 갔는데 바로 연락이 왔다. 좋아한다고, 만나보자고. (이건 두고두고 그에게 놀림감이 되었다. 남자가 그 한마디 직접 말 못 해서 메시지로 얘기한다면서.) 곧바로 그의 고백을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그렇게 우린 커플이 되었다.





그와의 찬란한 연애가 시작됐다.

세심하고 예민한 그에 비해 나는 질서 없고, 생각 없는 사내아이 같았달까.

내 친구들은 항상 오빠를 불쌍해했고, 남자와 여자가 뒤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항상 서운한 게 많았다. 연애를 하기엔 나는 너무 자유롭고 이기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하게 내 옆에 있었고, 나도 점점 사람으로, 여성으로 다듬어져(?) 갔다.




그와의 추억은 말로 다 못한다. 우린 그렇게 7년을 만났기 때문이다. 한 번을 헤어지지 않고.

내가 기간제 교사로 일을 할 때 만나,

미용실에서 울면서 일할 때도,

1년간 노량진을 오가며 공부를 할 때도,

이혼하셨던 부모님이 재결합을 했던 그 혼란의 때에도 내 옆을 지켰다.

치열했던 나의 20대 절반을 그와 함께 울고, 웃었다.




물론 그의 곁에도 내가 있었다. 1년에 한 번 겨울마다 그가 전지훈련을 가면 한 달 전부터 나는 울음바다였고, 그의 시합 날이면 한껏 예민해진 그의 눈치를 보며 함께 마음 졸였다. 그가 운동을 포기해야만 했던 그때에도 그와 함께 울었다. (생각해보니 눈물이 없는 그가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을 때는 운동을 그만둘 때가 아니라, 내가 그에게 플스4를 사줬을 때다....)




우리는 그렇게 늘 함께였고, 지금도 여전히 함께한다. 이젠 남자친구가 아닌 남편으로.

다른 점이라면 둘에서 넷이 되었다는 것과 이젠 간질거리는 감정이 아닌 전우애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 몰래 서로에게 'ㅗ'를 날리기도, 입 모양으로 알아들을 수 있게 소리 없는 욕이 오가기도 한다. 연애 때는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으로..

그럼에도 난 여전히 이 교회 오빠가 좋다. 무뚝뚝해도 세심하게 날 챙겨주는 그가 좋다. 우리집의 부엌을 책임지는 그를 존경한다. 나는 그의 첫째 딸로서 여전히 철이 없지만, 이 스탠스를 유지하며 그의 옆에 있을 거다. 그의 앞에서만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시절의 훈훈하고 수줍은 교회 오빠의 모습은 이제 사라지고 없지만,

그는 여전히 착하고 고마운 나의 영원한 교회 오빠다. (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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