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통한 값진 경험
"인듀어런스, 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
인듀어런스는 영국의 어니스트 섀클턴이 이끈 모험대의 배 이름이다. 1914~1916년까지 이들은 '남극대륙 횡단'을 목표로 모험을 했다. 남극을 향한 모험은 섀클턴이 처음은 아니다. 이전에 수차례 시도들이 있었다.
1901년. 로버트 스콧이 동물학자 윌슨 박사와 섀클턴과 함께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시도했었다. 그들의 목적은 남극점에 영국 국기를 꽂는 것이었다. 하지만 극한 상황과 건강 문제로 3개월 만에 어렵게 귀환하였다.
1907년. '님로드'호로 섀클턴이 탐험을 시작했다. 탐험 대원 3명과 조랑말 4마리를 태운 배는 남극점을 향했다. 하지만 남극점 150km를 앞둔 지점에서 전진을 포기했다. 식량이 바닥났고, 대원들의 체력 저하로 더 이상 무리하기엔 대원들을 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무리해서 욕심을 냈다면 지금의 섀클턴은 없었을 것이다. 포기는 때로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분명 또다시 기회가 찾아올 거라는 것을 믿었고, 이것은 섀클턴의 첫 번째 위대한 실패가 된다.
1911년. 10월 스콧과 노르웨이의 아문센이 동시에 남극을 향했다. 잘 훈련된 개와 스키로 아문센이 남극점에 먼저 도착하였고 스콧은 실패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죽음을 맞았다.
이런 스콧의 비극적인 죽음 1년 뒤, 인듀어런스 호의 탐험이 감행된 것이다. 무엇보다 1914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된 때이다. 전쟁으로 그의 탐험은 중단될 뻔했지만, 당시 해군성 장관으로 있던 윈스턴 처칠의 전보로 시작할 수 있었다.
"계속 진행하시오. … 당국은 탐험이 계속 추진되기를 바란다."
마흔이 넘은 나이, 전쟁 중인 유럽, 남극이라는 극한 환경.
도전을 하기엔 한계라고 느껴지는 것들 앞에 흔들리지 않고 나아갔을 섀클턴의 담대함과 전쟁 중에도 인간의 모험과 탐험을 지지했던 당국의 결정이 놀랍기만 하다. 그렇게 역사적인 모험이 시작됐다.
1914년 12월 마지막 날 인듀어런스 호는 남극권으로 들어섰지만 1월에 배가 부빙에 갇혀 꼼짝도 못 하게 되며 항해가 중단됐다. 배는 완전히 얼음에 포위됐다. 영하 20-30도, 강풍, 맹렬한 눈보라, 부빙이 반사하는 빛, 기나긴 어둠. 봄이 되어 얼음이 녹으려면 10월까지 7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4개월은 빛을 볼 수 없고, 가장 어두운 6월엔 정오 무렵의 짧은 희미함과 밤중의 달빛을 제외하면 빛이라곤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10월 27일, 배가 서서히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고, 인듀어런스 호는 그렇게 침몰하고 말았다. 이후 캠프를 설치하고 행군하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15개월 동안이나 그들은 얼음에 갇혀있었다.
4월이 되어 부빙이 움직였고, 그들은 산봉우리가 보이는 엘리펀트 섬으로 세 척의 배를 타고 항해를 한다. 큰 배가 아닌 정말 작은 배 세 척. 험난한 물길을 헤치고,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들이 느꼈을 고통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읽는 내내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바다와의 사투를 벌이고 드디어 엘리펀트 섬에 상륙한다.
그들은 남극의 겨울 바다에서 작은 배를 타고 7일 동안을 공포에 떨며 보냈다. 부빙 위에 허술한 캠프를 설치하고 변변한 식량도 없이 170일이나 표류했으며, 1914년 12월 5일 이후 497일 만에 처음으로 육지에 상륙한 것이다.
(p.110)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섀클턴은 몇몇 대원들과 제임스 커드 호를 타고 사우스 조지어 섬에 있는 포경기지로 간다는 발표를 하였다. 무려 1,000km의 거리, 지금까지 온 거리의 10배가 되는 거리를 갑판도 없는 작은 배를 타고, 겨울에 험난한 바다를 건너는 항해였다. 식량은 4주치만 챙겼고, 혹시 모를 실패에 두 척의 배를 남기고 섀클턴을 포함한 6명의 대원은 커드 호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무리를 하면서 떠났던 이유는 엘리펀트 섬에는 생존의 가능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포경기지로 가 구조요청을 해야만 했다. 대원들을 살리기 위한 목숨을 건 결정이었다.
커드 호의 항해 또한 결코 만만치 않았고,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배에서 내린 후에는 아무도 성공한 적 없던 섬을 36시간에 걸쳐 횡단한 끝에 마침내 포경기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결국 그들은 해냈고, 출발한 지 4개월 만에 엘리펀트 섬에 도착해 전원을 무사히 구조했다. 4개월간 엘리펀트 섬에서 대원들의 비참한 삶 또한 눈물겹다. 그 시간을 섀클턴에 대한 믿음으로 그곳에서 버텼던 대원들의 생존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섀클턴은 쌍안경을 들고 초조한 모습으로 대원들의 숫자를 헤아렸다. 해안에 있는 인원은 정확히 22명이었다.
(p.159)
그는 기나긴 지루한 싸움에서 대원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았다. 겨울을 날 수 있는 쾌적한 숙소를 만들었고, 긴 기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예술에서 찾았다. 일요일 저녁 주간 음악 감상회를 열었으며, 악기를 연주하고, 체스 게임을 했다. 4개월간 해를 전혀 볼 수 없는 환경에서 그들은 온갖 종류의 오락을 개발했다.
섀클턴이 대원을 뽑았던 방식을 보면, 화려한 경력의 이력서가 아니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다른 대원들과 함께 마구 소리를 지를 수 있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살아남는 것에는 경력이 아닌 인간성과 낙천적 태도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그의 빛나는 리더십이었다. 2년여의 긴 시간과 목숨을 건 극한의 환경에서 30명이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한뜻으로 함께한다는 것이 상상이나 되는가. 배에는 일반 선원, 고급 선원, 과학자, 예술가 등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하나로 통솔할 수 있었던 건 그의 헌신적인 리더십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직접 해결했고, 사소한 것까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희생과 섬김 그 자체였다. 늘 자신의 몫을 나눠 대원들을 살렸고, 대원들은 그에게 충성했다.
처절한 시련을 겪은 인듀어런스 호의 대원들에게 유일한 축복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섀클턴의 부하였다는 점이다.
(p.23)
섀클턴과 그 대원들은 남극횡단을 성공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수도 없이 부딪친 인간의 한계를 함께 극복했고, 전원이 생존했다. 그들은 분명 실패했지만, 또 분명히 성공했다. 그들의 첫 목적은 남극횡단이었겠지만, 이후의 목적은 '생존'이었으리라. 남극횡단이라는 목표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우선인 줄 알았던 섀클턴의 리더십은 이 위대한 실패를 이룬 셈이다.
남극 탐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의 위대한 힘을 받아들이는 순수한 마음과 한없는 인내력, 그리고 낙천성이었다. 이 3가지는 남극 탐험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가져야 할 태도임을 깨닫는다. 아무리 인간이 발버둥 쳐도 위대한 자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겸손함으로, 인간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에 인내하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낙천성과 명랑함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 인생에서의 여럿 실패는 결국 성공으로 귀결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말미에는 섀클턴을 포함한 탐험대원들의 그 이후의 삶에 대해 5~6줄로 간략히 정리되어 있는데 모두가 명예로운(?) 죽음을 맞지 못한 것을 보고 매우 허무했다.. 그런 엄청난 경험을 하고 나면 남다른 삶을 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고 이 또한 인간의 한계이며 그들이 이룬 업적은 오직 '함께'했기에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