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하여.

by 에이프릴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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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터에서 엄마의 유골함을 눈으로, 두 손으로 만졌던 기억을 애써 꺼내본다. 입관 때 마주했던 싸늘한 마지막 모습마저 사라지고 단지 한 줌의 분골이 된 엄마를 그저 허망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집에는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본 지 50일이 갓 지난 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거의 동시에 그리고 가장 가까이서 목도했기에 죽음은 결국 생명의 끝이자 또 다른 생명의 시작임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생명이 지속되기 위해 개체는 죽고,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생물학적 순환 속에서 죽음은 당연한 것이다. 죽음을 생물학적 필연으로 받아들일 때 그에 대한 두려운 감정도,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은 담담해진다.





죽음은 삶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기에 삶의 의미를 추구하며 노래하는 문학에서도 언제나 단골 소재이다. 최근 읽고 있는 작품들인 『카라마조프씨의 형제들』의 조시마 장로의 죽음, 『노르웨이의 숲』에서의 기즈키의 자살, 『오딧세우스』 하데스 편에서 만난 죽은 자들과의 대화까지- 이렇듯 죽음은 현실에도, 책 속에도 늘 도처에 존재하며 망각의 동물 인간에게 삶의 유한함을 일깨운다.





서머싯 몸의 <테헤란에서의 죽음>에서 하인은 죽을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망치지만 결국 죽음으로 향해 간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이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죽음을 자각하며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이며, 그것은 어쩌면 큰 축복이다. 삶의 유한함을 알기에 현재를 소중히 살아갈 수 있다. 작가 앤 라모트는 『쓰기의 감각』에서 이렇게 말한다.



죽어 가는 사람처럼 사는 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현존을 경함할 기회를 준다.
시한부 인생에게 살아 있는 시간이란 그 자체로 너무나 충만하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언젠가부터 이 문구를 자주 되뇌인다. 죽음을 기억할 때 지금의 삶에 더 충실해진다.

우리는 종종 죽음을 준비하며 유언을 남기고, 재산을 정리하며, 가족과 마지막 시간을 따뜻하게 보내리라 상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결국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았는가와 같은 삶 자체가 곧 유언이 된다. 그렇기에 나는 언젠가 죽음이 갑자기 찾아오더라도, 내가 삶을 통해 남긴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내 가족과 지인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꼭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기지 않아도 된다. 비장하게 살 필요도 없다. 그저 평범하고 무던한 삶도 삶이다. ‘잘 산다’는 기준을 지나치게 붙잡고 남의 삶을 재단하거나 내 삶이 기대만큼 되지 않았다고 괴로워하는 오만은 피하고 싶다. 그런 강박은 타인의 삶을 하찮게 여기게도 하고, 결국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 중요한 건 현실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나름대로 부단히 애쓰되 기능적인 삶에 매몰되거나 집착하지 않기를. 그 자체로 충분한 삶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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