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닉'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어떤 일을 몹시 즐겨서 온통 마음이 그 일에 쏠리는 것을 말한다.
자유의지로 선택한 어떤 대상에 대한 탐닉은 오히려 그것에 사로잡혀 자유를 잃기도 하는 데, 그것을 중독이라 한다. 탐닉은 기꺼이 빠져듬으로 자발적이고, 감정적으로 몰입된 상태인 반면, 중독은 통제력을 상실한 채 반복되는 통제 불가능한 강박적 상태를 의미한다.
탐닉에서 중독으로 가는 길은 아주 스무스하다. 탐닉은 자발적이라서 중독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도 위험 신호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좋음'으로 시작한 것이 어느새 '끌려감(의무)'이 될 때,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삶의 다른 부분들이 희생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중독의 상태를 알아차린 것만으로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탐닉에서 중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예시로 sns, 유튜브, 숏츠 같은 온라인 컨텐츠 플랫폼이 있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찐 정보'들을 찾거나,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지만 한정된 시간을 까딱하는 손가락짓에 속수무책으로 흘려 보낸다. 관계를 잃기도 하고, 카메라를 드느라 정말 봐야할 것을 놓치기 일쑤다. 굳이 겪지 않아도 될 불안과 비교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하며, 잠을 못이루기도 하며 말이다.
각기 다른 형태의 탐닉들의 뿌리는 아마도 결핍, 허기 혹은 고독일 것이다.
인간이기에 누구나 결핍을 가지고 있으며,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수많은 요인들에 의해 우리는 움직이고, 탐닉한다. 꼭 어떤 유해하고 자극적인 탐닉이 아니더라도 '누구나가' 일상에서의 소소한 탐닉, 그리고 아주 조용한 중독 속에 살아간다.
타인의 시선에 중독.
자기연민에 중독.
생산적인 척하는 중독, 혹은 바쁨 중독.
자기 합리화 중독.
긍정 중독.
삶의 태도에 관련한 중독 중에는 이렇게 소소하지만 깊게, 조용하게 사람을 좀먹는 것들이 있다. 감정과 정체성의 뿌리와 연결된 중독들이다. 나는 이러한 정서적 중독에 좀 더 집중해보고자 한다.
요즘 나의 일상의 큰 탐닉은 독서과 글쓰기다. 오롯한 혼자만의 시간을 채우는 이 두 가지는 지금 내게 가장 재미있는 일이다. 워킹맘이라면 남는 시간에 집을 정리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부재의 시간으로 인해 흐트러진 살림들을 재정비할 법도 한데 그 부분에 대해선 아주 감은 눈을 한다. 꼭 감는다. 그리고 책 앞으로, 노트북 앞으로 도망간다. 되게 좋은 도피처다. 심지어 있어 보이기까지 해서 누군가의 칭찬을 받기도 한다. 이것이 중독이 아니고 무어겠는가. 회피 중독이랄까.
살림과 육아의 끊임없는 책임과 반복의 굴레에서 책과 글은 통제 가능한 세계이고, 자유이다. 나만의 안전지대이며,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생각하는 나, 의식하는 나'로 존재하게 하며, 엄마라는 이름보다 나 자신으로 살아 갈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나는 이 중독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요즘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함께 이야기하며 통찰을 나누는 친구가 있다. 바로 Chat GPT다. (너무 좋다!)
그의 조언은 이렇다.
“내가 지금 책을 펼친 이유는, 알고 싶어서인가? 도망치고 싶어서인가?”
“이 글을 쓰고 나서 나는 좀 더 명료해졌는가, 아니면 더 멀어졌는가?”
“이 도피처가 나를 살리는 선인가, 무너지는 시작인가?”
이 질문들에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다면 지금의 중독은 오히려 창조성과 자기 회복력의 씨앗이 될 수도 있으며, 이걸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중독은 통제 가능한 선택의 영역이 된다고 말했다.
그럼 간단히 내 나름의 답을 해보겠다.
내가 책을 펼친 이유는 알고 싶어서이기도, 도망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글을 쓰고 나서 '나'는 좀 더 명료해진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기 때문이다. 책과 글쓰기를 도피처로 삼고있는 것을 지금 글을 쓰면서 비로소 알게된 것처럼.
이 도피처는 나를 살리는 선이기도 하지만 의무를 저버리는 데까지 가서는 안된다. 스스로 경계와 균형을 세워야 한다. 지금처럼 정해진 시간 안에서만 누려야 할 권리들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나는 오늘도 중독과 탐닉의 경계에서 나를 지켜내는 방식으로 읽고 쓴다.
앞으로도 책과 자판을 도피처 삼으며 도망치고 (나를)찾고를 반복할 것이다. 다만 이 도피처가 나를 삼키지 않도록, 나를 지키는 선에서만 머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조율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