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은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서 시작한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수용하며 존중할 수 있는 힘은 자존감의 근원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마음속의 태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나를 '존중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내 몸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어릴 때의 나는 몸을 건강이 아닌 외모로만 인식했다. 작은 키와 볼품없는 체형은 늘 불만이었고, 이런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이라며 엄마에게 괜한 원망 섞인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지금도 완전히 외모로부터 자유롭진 않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중요한 건 ‘보기 좋은 몸’이 아니라 ‘살아갈 수 있는 몸’이라는 사실을 점점 더 절실히 깨닫고 있다.
그걸 가장 깊이 체감한 시기는 임신 기간이었다. 두 번의 임신 모두 막달까지 이어진 입덧으로 거의 누워만 지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병이 있어 아픈 건 아니었지만, 건강이 무너진 몸은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아이를 품고 있음에도 무기력함과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했던 그 시기, 나는 처음으로 건강이 삶의 활력과 자존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게 됐다.
반대로 내 몸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과 인식을 갖게 된 때는 바로 작년이었다.
둘째를 출산하고,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후 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살기 위해 운동을 해야할 때가 왔던 것이다. 근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몸, 바닥이 된 체력이 되어서야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누운 몸을 일으켰다.
당시 거의 매일 땀을 흘리며 홈트를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내 몸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다. 외형이나 뚝딱거리는 몸의 어설픈 움직임과 상관없이 그냥 이렇게 땀을 흘리며 운동하고, 건강하게 몸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변화시켰다. 삶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달까. 늘 불만이던 몸이었지만 그때만큼은 움직일 수 있는 몸을 가진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활력을 되찾았다.
나는 이 두 번의 경험을 통해, 건강한 몸은 곧 건강한 자존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몸소 배웠다. 하지만 나라는 인간은 어리석게도 게으름의 관성과 음주와 같은 순간의 쾌락을 이기지 못하고 나의 몸을 돌보는 일 따위는 미뤄둔 채 살고 있다. 아직 젊음이라는 쓸만한 무기로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유효할는지는 알 수 없다.
건강한 몸이 있어야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어야 비로소 나를 사랑할 수 있다.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조금씩 나를 돌보자.
운동이 죽어도 하기 싫다면(하기 싫다), 사소한 건강 습관 하나라도 만들어보겠다. 매일 저녁 한 잔씩 먹는 와인이나 맥주도 줄이고, 그 좋아하는 간식과 밀가루도 조금씩...(아, 벌써 하기 싫으니 난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역시 생각과 몸은 늘 따로 노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