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나는 여행 강박이 있었다.
여행은 꼭 가야만 하는 것, 안 가면 안 되는 병에 걸렸었달까.
누가 주말이든, 방학이든 어딜 다녀왔다고 하면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에게 어디든 가자고 조르곤 했다. 그는 운동선수였다. 평일에 훈련하고 주말에는 쉬고 싶었을 텐데 나는 여기저기 쏘다니는 것을 좋아했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그에게 참 고달팠던 연애였겠다 싶다. 그는 늘 피곤해했고, 나는 그게 못마땅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여행이 인생을 즐기는 근사한 취미라고 여겼고, ‘청춘’에 대한 예의처럼 느껴졌으며, 어쩌면 그냥 심심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반복되는 일상을 '잘 살아내는' 방법을 몰랐다. 지루함을 못 견뎠고, 말 그대로 심심했다. 그렇다고 게을러서 특별히 뭘 하지도 않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통해 새로운 자극을 찾으려 했다. 막상 다녀오고 나면 기억도 못 하고, 체력도 약해 조금만 무리해도 병이 나면서, 그땐 어디든 가야 했다.
돌이켜보니 참 어리석었다. 문제는 여행이 아니라 삶의 태도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말해 뭐 하나, 집이 최고다. 집 떠나면 고생이다. 나는 완벽하게 변했다.
게다가 지금의 여행은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여행이 되었다.
일단 아이가 있는 집은 짐 싸는 것부터 난관의 시작이다. 계절을 가리지 않는 온갖 물놀이 용품들과 비상약 한가득, 아이들의 여분 옷, 놀거리와 간식으로 가득 채운 트렁크를 비롯한 여러 형태의 가방들을 차에 테트리스하듯 구겨 넣어야 한다. 그렇게 챙겼어도 뭘 놓쳤을까 불안하고, 결국 꼭 뭐 하나는 빠뜨린다.
여행 가는 차 안 풍경도 다르다.
20대의 흥 많던 나는 90년-00년대 가요를 틀어놓고 추억에 젖은 채 차 안은 방구석 노래방이 되곤 했다. 여행 가는 차 안은 늘 음악과 함께 들썩였다.
반면 지금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요가 흐른다. 첫째 아이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가끔은 어렸을 때 내가 도저히 이해 가지 않았던, 나는 절대 볼 것 같지 않았던 엄마 아빠의 취향의 유튜브(뉴스, 교양 등의 채널)를 틀어놓기도 한다.
이제 여행의 목적은 '아이들의 체험'이 되었다.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여행지가 정해지면 가장 먼저 어린이 박물관, 과학관, 체험학습 장소부터 찾는다. 그 여행 중 우리 부부를 위한 일정으로는 커피가 맛있는 카페를 들르는 것 -그마저도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가 있는- 과 밤에 숙소에서 먹는 맥주 한 잔 정도가 아닐까. 사실 이제는 너무 피곤해서 맥주 한 캔도 겨우 먹고, 9시면 애들보다 내가 먼저 곯아떨어진다. 남편과의 오붓한 맥주 타임을 가질 여유도, 체력도 없어지더라.
그렇게 우리는 아이들을 위한 여행을 하고, 아이들의 즐거움이 목적이 되었다. 애들이 좋아하고,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을 볼 때, "엄마, 또 오고 싶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 비로소 만족하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새 나는 이렇게 '부모'가 되었나 보다.
이제는 예전처럼 내 인생에 새로운 자극을 추가하고 싶지 않다. 지금도 충분히 자극적이고 전혀 지루할 틈이 없다. 아이들과의 일상만으로도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마주한다.
무엇보다 이제는 책을 통해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적인 자극과 상상의 즐거움, 뼈 때리는 인생 조언,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다른 이의 생을 들여다보고 대신 살아보기도 하는. 시간과 체력도 아끼며 떠나는 최고의 여행이다.
예전엔 여행이 꼭 무언가를 ‘얻어야’ 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능동적인 경험만이 나를 성장시킨다고 여겼다. 여행이 가지는 다양한 의의와 의미를 의식적으로 부여하고, 여러 이유들을 갖다 붙이며 여행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재밌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저 콧바람 한번 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여행이다.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체험을 해주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조금 내려놓으려 한다. 그래서 이번 여름휴가는 조금은 마음을 덜 쓰고 떠나보려 한다. 흘러가는 대로.
여행의 취향이라는 것도 나이와 함께, 옆에 있는 사람에 따라서도 변해가나 보다.
여행을 가기 위해 일상을 살았던 내가 이제는 일상을 여행처럼 살고 있다.